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韓영화계가 바라는 것..타산지석 삼길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22.03.10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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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빠진 한국영화산업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부탁한다."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에게 바라는 영화계 목소리는 이 한 마디로 귀납된다. 다만 이 목소리에 담긴 뜻은 조금씩 다르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바라는 이도 있고, 급변하는 한국영화산업을 제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통합 부처가 신설되길 바라는 목소리도 있다. 정권 교체가 어떤 변화를 줄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기도 하다. 블랙리스트의 악몽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현재 한국영화산업이 위기인 건 새삼스럽지 않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1년 한국영화산업 결산 자료에 따르면 2021년 한국영화산업 시장 규모는 1조 239억원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2년째 감소 중이다. 한국영화 점유율이 50% 이하로 떨어졌으며, 지난해 개봉한 한국 상업영화 추정 수익률은 -47.3%로 영진위 조사 이래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개봉을 못하고 있는 한국영화들이 100여편에 달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한국영화산업 변화는 급속도로 빨라졌다. 극장을 중심으로 한 기존 영화산업에서 OTT서비스로 플랫폼이 다양화됐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이 주최하는 디렉터스컷 시상식에 OTT시리즈 부문이 올해 신설된 건 이 같은 변화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코로나19 팬데믹과 OTT서비스 시장 성장이 가속화되면서 여러 영화 제작사들이 CJ ENM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 JTBC스튜디오 등 대기업에 인수됐다. 한국영화산업이 뿌리째 바뀌고 있는 것.

이처럼 변화가 급격하고, 각기 이해관계가 다 다르기에 한국영화산업 지원에 대한 생각도 다를 수 밖에 없다.


이럴 때는 지난 정부들의 영화 정책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1990년대 김영삼 정부는 영화산업 육성을 경제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했다. 탈규제와 지원이라는 두 가지 기조로 영화프린트벌수 제한을 폐지하고, 대기업의 영화산업 참여를 허용했으며, 영화제작을 제조업으로 인정했다. 이런 정책으로 영화제작에 새로운 자본이 유입됐고, 극장시장에 변화가 생겼다. 1995년에 영화진흥법과 영상물진흥법이 제정돼 한국영화산업에 직접 지원이 시작됐다. 1990년대 한국 영화산업 르네상스가 시작된 토대를 마련한 것.

뒤를 이은 김대중 정부는 1999년 정부 주도의 영화진흥공사에서 민간 주도의 영화진흥위원회로 영화정책 컨트롤타워를 바꾸었다. 김대중 정부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기조 아래 한국영화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을 실시했다. 이 시기 1차 한국영화진흥계획에 따라 한국영화 제작 활성화를 위한 지원, 영화아카데미 운영, 한국영화 해외 진출을 위한 지원, 서울종합촬영소 운영 등이 실행됐다.

김영삼 정부가 자본 유입과 탈규제로 한국영화산업을 발아했다면, 김대중 정부는 한국영화산업을 본격적으로 육성하는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새롭고 다양한 한국영화들이 1990년대말과 2000년대 중반까지 쏟아진 건 이 같은 정책들이 바탕이 된 덕이 크다.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의 영화 정책 기조를 이어가는 한편 다양성과 공공성 확대에 중점을 뒀다. 뛰어난 한국독립영화 감독들이 육성되고, 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던 시기가 이 당시와 맞물려 있다. 영화사들의 우회 상장으로 신규 자본이 유입되고, 돈이 넘치는 덕에 다양하고 실험적인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한편으로는 이 시기는 한국영화산업 거품이 차올라 2006년을 정점으로 한 뒤 2007년부터 한국영화산업이 위촉되기도 했다.

뒤를 이은 이명박 정부는 선택과 집중이란 기조로 영화산업 정책에 초점을 맞췄다. 우선 영화진흥위원장 선출 방식이 바뀌었다. 전임 정부들에선 9인의 영화진흥위원들이 호선으로 영화진흥위원장을 뽑는 방식이었다면, 이명박 정부부터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영진위원장을 지명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민간 중심의 영진위에서 정부가 보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뀐 것. 이 과정에서 영진위원장들이 불명예스럽게 퇴장하는 사례들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블랙리스트 그림자가 영화산업 뿐 아니라 문화산업 전반에 드리워졌다. 진보적인 인사들에 대한 지원을 암암리에 줄이는 일이 벌어지면서 정부 자금이 투입된 모태펀드 운영에도 영향을 끼쳤다. 역설적으로 모태펀드 투자를 받지 못하게 된 대기업들이 새로운 자금을 찾으면서 창투사들이 한국영화산업에 본격적으로 발을 딛는 계기가 됐다. 이 시기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맞물려 금융시장이 요동쳤던 때이기도 했다. 갈 곳 잃은 자본들이 이 같은 상황 때문에 한국영화산업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또한 이명박 정부의 친시장적인 영화정책으로 대기업의 수직계열화가 본격화됐다. 이 시기에 한국영화산업은 필름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변화했으며, 멀티플렉스들이 급증해 극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좋은 말로 한국영화산업이 본격적으로 산업화됐던 시기이며, 나쁜 말로 대기업의 과점 시장이 형성된 때였다.

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특정 대기업이 눈 밖에 나면서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세계적인 영화산업 성장 붐에 힘입어 한국영화산업도 매년 성장했다. 창투사들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블랙리스트 여파가 여전했지만 다양한 자본들이 한국영화산업에 투입돼 성장을 견인했다. 새로운 투자배급사가 우후죽순 생기는 시기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영화정책을 노무현 정부 시절로 회귀했다. 다시 영진위원장을 영진위원들이 호선해 선출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공공성과 다양성에 정책 초점을 맞췄으며, 블랙리스트 진상규명에 나섰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영화산업 육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문재인 정부는 다양성 영화, 소외된 영화산업 종사자들에 대한 지원에 보다 주력했다. 이런 기조로 표준계약서가 정착됐으며, 스태프들의 임금 등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이에 따라 영화 평균 제작비가 급격히 상승했으며, 제작비 상승은 결국 극장 관람료 인상으로 이어지게 됐다. 좋은 독립영화감독들이 각종 지원 덕에 좋은 독립영화들을 만들고 각종 영화시상식에서 신인감독상을 휩쓸었다. 다만 독립영화감독들이 과거처럼 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하는 경우는 줄었다. 영화산업이 양극화되면서 신인감독들에게 기회가 줄어들기도 했지만 독립영화에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된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했다. 영화 정책 상당수가 타격을 받고 한국영화산업이 버티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새 정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에 흩어져 있는 미디어 및 콘텐츠 산업 진흥 정책을 총괄할 부처를 신설할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진흥정책도 이 부처에서 총괄하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분명한 건, 지금 한국영화산업은 보다 세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한국영화산업을 둘러싼 시대적 시기는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과 닮았다. 아니 훨썬 어렵다. 3년째를 맞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산업이 붕괴되기 직전이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산업이 바뀌었을 때보다 극장에서 OTT서비스로 플랫폼이 다변화되면서 변화의 바람이 더욱 거세다. 메타버스와 디지털 스튜디오가 기존 영화 제작 방식을 바꾸고 있기도 하다. '오징어 게임' 등 한국 콘텐츠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지만 정작 제작사들은 플랫폼 하청업체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새 정부는 극장을 중심으로 한 기존 영화산업이 버틸 수 있는 지원을 하는 한편 콘텐츠 제작사들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정책을 동시에 써야 한다. 이 시기를 놓치게 된다면, 자칫 한국영화산업이 대만이나 일본처럼 전락할 수도 있다.

과연 5년 뒤에 윤석열 정부의 영화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게 될지, 부디 과거를 거울 삼아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전형화 기자 aoi@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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