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에 16강 진출... 팔레스타인 축구 '아시안컵 기적'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입력 : 2024.01.26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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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선수들이 지난 24일(한국시간) 아시안컵 홍콩전에서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최근 중동 매체 '알자지라'에 따르면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이 열리기 전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축구 선수들은 모두 71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사망했다. 이 와중에 팔레스타인 올림픽 축구 대표팀 코치도 유명을 달리했다.

이번 아시안컵에 나선 팔레스타인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은 훈련을 하면서도 가자 지구에 살고 있는 그들의 가족과 친척의 생사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다. 어찌 보면 이들은 축구에 전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은 지난 24일(한국시간) 조별리그 C조 최종 3차전에서 홍콩을 3-0으로 제압하고 1승 1무 1패(승점 4), 조 3위로 사상 첫 아시안컵 16강에 올랐다. 경기가 끝나자 가자 지구 출신의 수비수 모하메드 살레흐(31)는 눈물을 흘리며 그라운드에서 이슬람식 기도를 했다. 응원을 나왔던 팔레스타인 팬들도 "이 승리는 자유를 위해 싸우는 우리를 뭉치게 했다"며 감격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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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람 다붑 팔레스타인 축구대표팀 감독. /AFPBBNews=뉴스1
팔레스타인 축구의 기적은 튀니지 출신의 마크람 다붑(52) 감독의 지도력에서 나왔다. 그는 전쟁 때문에 해외를 전전하며 선수들과 동고동락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였던 선수들에게 적어도 훈련과 경기에서는 축구에 집중할 것을 계속 주지시켰다.

다붑 감독은 선수 운용과 전술적인 면에서도 큰 변화를 줘야 했다. 아시안컵 예선부터 팔레스타인은 전쟁으로 대표 선수 차출이 쉽지 않아 공격수와 중앙 미드필더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선수 부족 때문에 다붑 감독은 남미 칠레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도 대표팀에 불러 들여야 했다. 50만 명의 팔레스타인 이민자들이 살고 있는 칠레에는 1920년 창단한 팔레스타인 클럽 데포르티보 팔레스티노가 있다. 이번 아시안컵에도 이 클럽에서 뛰고 있는 선수 2명을 대표팀에 선발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민들에게 축구가 자부심이 되도록 하겠다'는 다붑 감독의 지휘 아래 끈끈하게 뭉친 팔레스타인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조별리그 2차전(1-1 무)부터 살아났고 홍콩전에서 폭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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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한국시간) 홍콩전에서 응원하는 팔레스타인 팬들. /AFPBBNews=뉴스1
팔레스타인은 오랫동안 국제무대에서 공식 경기를 치를 수 없었다. 1998년에야 FIFA(국제축구연맹)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지역을 영국이 위임 통치했던 1928년 이 곳에서 먼저 축구협회를 조직해 이듬해 FIFA에 가입한 것은 유대인들이었다. 이후 FIFA는 같은 지역에서 두 개의 협회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내세워 팔레스타인의 가입을 승인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에 밀렸던 팔레스타인 축구는 지난 2017년 새로운 역사를 이뤘다. 팔레스타인은 이때 처음으로 FIFA 랭킹에서 이스라엘에 앞서게 됐다. 당시 팔레스타인의 FIFA 랭킹은 82위, 이스라엘은 90위였다. 이듬해인 2018년 팔레스타인의 FIFA 랭킹은 73위까지 상승해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2023년 12월 현재 팔레스타인은 99위이고, 유럽축구연맹(UEFA) 소속의 이스라엘은 75위이다.

2023 아시안컵에서 팔레스타인은 오는 30일 오전 1시 개최국이자 디펜딩 챔피언인 카타르와 16강전을 치른다. 전쟁 중에 축구로 희망을 쏘아올린 팔레스타인의 기적이 어디까지 계속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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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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