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탈락했는데...' 日 남녀 농구 동반 파리행, '슬램덩크 송태섭' 덕분?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입력 : 2024.02.15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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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자 농구 대표팀 선수들이 지난 12일(한국시간) 캐나다를 꺾고 파리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후 기뻐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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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9월 오키나와에서 열린 농구 월드컵에 출전한 일본 남자 농구 대표팀 선수단. /AFPBBNews=뉴스1
일본 농구는 최근 상종가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일본 여자농구 대표팀은 지난 12일(한국시간)에 캐나다를 제압하고 파리 올림픽 본선 티켓을 획득했다. 일본 남자농구 대표팀도 2023년 일본 오키나와에서 펼쳐진 농구 월드컵 대회에서 3승 2패를 거두며 아시아 대륙에 한 장 배정돼 있는 파리 올림픽 진출권을 따냈다. 아쉽게도 한국 남녀 농구 대표팀은 모두 올림픽 본선행이 좌절됐다.

흥미롭게도 일본 여자와 남자농구 대표팀의 플레이 스타일은 엇비슷하다. 두 팀의 플레이 스타일은 스피드, 수비 조직력과 3점슛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일본 농구의 전형이 된 이른바 '다이내믹 바스켓볼'은 유럽이나 북미의 강호들에 비해 일본 대표팀 선수들의 신장이 작기 때문에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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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자 농구 대표팀의 야스마 시오리(가운데). 그의 신장은 161㎝이다. /AFPBBNews=뉴스1
이번 파리 올림픽 예선에 출전한 일본 여자 대표팀의 평균 신장은 174.4㎝로 유럽 강호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세였다. 하지만 이들은 빠른 스피드로 상대의 실책을 유도하면서 결정적인 순간 정교한 중거리 슛을 터트리며 올림픽 본선 무대에 안착할 수 있었다. 그 중심에는 야스마 시오리(30·도요타 안텔로프스)가 있다. 야스마는 키 161㎝에 불과하지만 뛰어난 스피드와 저돌적인 돌파 능력을 앞세워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일본 남자 농구 팀의 가드로 지난 해 농구 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킨 가와무라 유키(23·요코하마 B콜세어즈)의 신장도 172㎝에 불과하다. 그 역시 스피드와 뛰어난 드리블 기술에 정밀한 3점슛 능력까지 겸비한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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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남자 농구 대표팀의 가와무라 유키(왼쪽). /AFPBBNews=뉴스1
일본 농구의 이런 스타일은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일본 중·고교 농구 팀에서 드리블 능력이나 스피드가 뛰어난 단신의 유망주를 뽑아 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문화가 확산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와 같은 문화가 전국적으로 퍼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만화 <슬램덩크>였다. <슬램덩크>에 등장하는 포인트 가드 송태섭(일본명 미야기 료타)는 단신이지만 투지와 스피드는 물론 경기를 읽는 능력이 뛰어난 선수로 묘사됐다. 그의 플레이에 매료된 단신의 일본 농구 꿈나무들은 '키가 작아도 농구를 잘 할 수 있다'는 믿음 속에서 농구부에 가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지만 <슬램덩크>의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54)가 송태섭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1978년 일본에서 전국적인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오키나와의 한 고교 농구 팀에 감명을 받아 송태섭 캐릭터를 창조했다.

이노우에 작가는 평균 신장 169cm에 불과했지만 1978년 인터 하이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한 오키나와의 헨토나 고교의 활약을 흥미롭게 지켜본 뒤 키 작은 단신 가드 캐릭터(송태섭)를 만들게 됐다고 2023년 일본에서 출간된 <일본 바스켓의 혁명으로 불리는 남자>에서 밝혔다. 그가 직접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슬램덩크>에서 송태섭의 고향을 오키나와로 정한 것도 오키나와 소재의 헨토나 고교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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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틸 컷.
이노우에 작가가 주목한 헨토나 고교의 플레이 스타일은 풍부한 활동량으로 재빠르게 움직이면서 단신 팀의 약점을 커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헨토나 고교의 농구 감독이었던 아사토 유키오(71)를 찾아가 농구 만화를 그리기 위한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얻었다.

2023년 농구 월드컵에서 일본이 단신 가드 가와무라의 대활약에 힘입어 장신 팀 핀란드를 제압했을 때 일본 농구 전문지 '월간 바스켓볼 WEB'은 추억의 농구 팀 헨토나 고교를 소환했다. 이 잡지는 "(일본의 핀란드 제압은) 마치 헨토나 고교 선풍에서 나타난 일본 농구의 방향성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한 통쾌한 승리"라고 평가했다.

신장에 관계 없이 능력 위주로 선수를 선발해 이들의 스피드, 체력, 기술을 극대화시켜 세계 무대로 돌진하고 있는 일본 농구의 혁명적인 변화는 그런 면에서 헨토나 고교와 <슬램덩크>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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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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