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한 게 보였나요?" 여제 김연경, 궂은일 마다않는 '우승바라기'

인천=안호근 기자 / 입력 : 2024.03.23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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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김연경(오른쪽)이 22일 정관장과 V리그 여자부 PO 1차전 승리 후 레이나와 함께 기뻐하고 있다. /사진=KOVO
1블로킹 1서브에이스 포함 23점, 공격 성공률 40.38%.

뛰어난 성적이지만 압도적이라고 평가하기엔 어딘가 부족함이 있어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김연경(37·인천 흥국생명)은 취재진이 뽑은 수훈선수로 홀로 인터뷰장에 들어섰다. 25점을 기록한 윌로우 존슨(등록명 윌로우)도 있었지만 이날 승리의 일등공신이 김연경이라는 데에는 누구도 이견을 달 수 없었다.


흥국생명은 22일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열린 대전 정관장과 도드람 2023~2024 V리그 여자부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PO·3전 2승제) 1차전에서 김연경의 맹활약 속에 세트스코어 3-1(22-25, 25-13, 25-23, 25-23)로 역전승을 거뒀다.

역대 여자부 17차례 PO 중 1차전 승리팀은 단 한 차례도 빠짐없이 모두 챔피언결정전 진출 티켓을 따냈다. 그만큼 유리한 고지에 올라선 흥국생명이다.

1세트를 내준 뒤 맞은 2세트 김연경은 공격 성공률 66.67%로 7점을 몰아치며 손쉽게 2세트를 팀에 안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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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를 넣는 김연경. /사진=KOVO
3세트 김연경의 진짜 가치가 빛났다. 3세트 수치상으로 가장 돋보인 건 윌로우였다. 홀로 10점을 몰아쳤다. 그럼에도 김연경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세트였다.

15-20으로 패색이 짙었던 상황에서 네트에 바짝 붙는 까다로운 토스를 감각적으로 밀어넣으며 득점에 성공했다. 16-22에서도 거의 흡사한 장면이 나왔고 김연경은 다시 한 번 팀에 점수를 보탰다. 이후 흥국생명은 분위기를 타고 한 점씩 따라붙기 시작했다. 메가의 오픈 공격을 막아내는 김수지의 결정적인 블로킹이 나왔고 윌로우의 퀵오픈 이후 정관장의 세트가 길어지며 네트를 한 번에 넘어온 공을 김연경이 다이렉트킬로 득점을 성공시키며 21-23으로 바짝 추격했다.

이후 김연경이 서버로 나섰다. 예리한 서브에 정관장은 제대로 된 공격 기회를 만들지 못했고 이후 윌로우의 오픈 공격, 레이나의 블로킹으로 이어지며 23-23 동점을 만들었다. 김연경의 서브는 계속됐고 윌로우가 다시 한 번 오픈 공격을 성공시켰다. 24-23 세트포인트. 이번에도 서브를 날린 김연경은 지아의 백어택, 메가의 2연속 오픈 공격을 모두 몸을 날려 받아냈다. 김연경의 끈질긴 수비는 세트를 끝내는 윌로우의 오픈 득점으로 연결됐다.

3세트 득점은 단 3점이었으나 양 팀 최다인 디그는 10번 시도해 9차례 성공시켰고 서브 또한 가장 많은 8번이나 넣었다. 그만큼 김연경의 서브 때 득점이 많이 나왔다는 방증이다. 날카로운 서브로 상대 리시브 라인을 흔들어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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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김연경(왼쪽)이 정관장 박은진을 앞에 두고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KOVO
흥국생명은 기세를 탔고 4세트 김연경은 직접 7점을 몰아치며 정관장 격파 선봉에 섰다. 이날 김연경은 공격 이상으로 수비에서도 빛났다. 리시브 17개 중 9개를 정확하게 받아냈다. 리시브 효율은 52.94%에 달했다. 김연경은 리시브 효율 42.46%로 전체 5위에 올라 있다. 리베로를 제외하면 2위 문정원(한국도로공사·50.61%) 다음으로 돋보였는데 이날은 자신의 평균을 훨씬 웃도는 효율을 보여줬다.디그는 28차례 시도해 25차례나 상대의 공격을 걷어냈다. 서브도 가장 많은 19개를 했다.

경기 후 만난 김연경은 "어려운 경기를 했다. 쉽게 갈 수 있었던 상황을 시즌 초반 때 그랬는데 경기를 이끌어갔고 2세트를 잡아내고 3세트도 흐름을 넘겨줬는데 선수들과 끝까지 하자고 말했다"며 "그런 경기 뒤집어 이긴 경우가 많아서 서로 얘기하면서 할 수 있다고 푸시해주다보니 잡아낼 수 있었다. 3세트가 결정적이었다"고 돌아봤다.

3세트를 잡아내는 윌로우의 득점이 나오자 김연경은 웜업존의 동료들에게 달려가 격하게 포효했다. 그는 "윌로우가 오면서 팀이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고 경기를 할 때 잘할 때 즐기면서 서로 재밌게 하다보면 긴장감도 사라지고 경기 잘 되더라"며 "윌로우도 그런 걸 알고 노력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모든 선수들이 자기를 보고 있다는 걸 알고 분위기 올리기 위해 노력한다. 격려하면서 해서 잘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윌로우를 믿고 후위에서 수비에 치중했고 윌로우가 막판 직접 매듭을 지어 따낸 세트라 더 의미가 남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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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가운데)이 승리 후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사진=KOVO
3세트 연이어 길게 날아온 토스에도 연달아 득점을 해냈던 김연경은 세터와 호흡을 다소 아쉬웠다는 평가에 "고생이 많이 보였나"라고 반문하며 "쉽지 않은 경기를 했다. 공이 네트에서 조금 떨어지게 오는 상황을 많이 연습했는데 호흡이 안 좋았다. 훈련 때 잘 된 부분들이 안 된 게 있었다. (2차전까지) 내일 하루가 남았는데 조금 더 훈련을 하겠다"고 전했다.

후위에서 리베로 도수빈이 흔들릴 때마다 다독이고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손짓을 하는 장면이 자주 보였다. 김연경은 "포메이션 자체가 (도)수빈이의 범위가 넓다. 리베로라고는 하지만 혼자 그 자리를 다 메우기는 쉽지 않다. 레이나를 상대가 공략하기에 그쪽도 커버 해야 한다"며 "그래도 넓은 범위를 맡는 것 치고 잘하고 있다. 2차전에서 더 잘해서 잘해줬으면 좋겠다"고 독려했다.

클러치 상황에서 더욱 빛이 나는 에이스 김연경이다. 특별한 비결이 있을까. "상대의 블로킹이나 수비를 보고 어디를 (공략할지) 경기 전부터 이미지 트레이닝한다"며 "상대가 나를 마크하는 걸 안다. 짧은 시간 안에 그런 상황을 돌려보고 어디를 공략할까 생각하는데 참 어려운 일이다. 2차전에도 그런 상황이 많이 나올 것. 그런 걸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챔피언결정전에서 먼저 2승을 거두고도 3연패하며 고개를 떨궜다. 김연경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끝까지 잘 해야 한다. 대전 원정에선 초반 분위기가 정말 중요할 것 같다. 흐름이 우리에게 넘어왔다. 바로 마무리할 수 있는 걸 보여줘야 한다"며 "작년 일은 생각을 안 하고 싶지만 얘기를 꺼내셔서 생각이 난다. 작년과 올해는 다르다고 생각이 든다. 작년엔 워낙 도로공사가 잘했고 3차전부터 우리가 긴장을 늦춘 부분도 있었다. 진 건 인정하되 그걸 다시 하면 안 된다. 2차전을 잘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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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이 승리 후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안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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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근 | oranc317@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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