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LG 오스틴(왼쪽)의 모습. |
27일 잠실 삼성-LG전. LG가 1-2로 뒤진 5회말이었다. 1사 후 박해민이 우전 안타로 출루한 뒤 홍창기가 삼진을 당했으나, 김현수가 안타를 치면서 2사 1, 3루의 기회를 잡았다. 다음 타자는 LG의 복덩이 외국인 타자 오스틴.
삼성 마운드에는 여전히 선발 원태인이 서 있었다. 이제 승리 투수 요건까지 남은 아웃카운트는 1개. 원태인이 뿌린 이날 89번째 공이 몸쪽 깊숙하게 향하며 볼이 됐다. 146km 속구였다. 이어 2구째는 한가운데 슬라이더(135km) 스트라이크. 오스틴은 그냥 지켜봤다.
볼카운트는 1-1. 그리고 3구째. 원태인의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회심의 패스트볼이 바깥쪽 코스를 꽉 차게 훑고 지나 강민호의 미트에 그대로 꽂혔다. 순간, 오스틴은 멀어 보였던 듯 스트라이크 판정이 내려지자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인상이 잠시 찌푸려졌다.
불리한 1-2의 볼카운트로 몰린 오스틴. 이어 4구째. 원태인의 이날 마지막 92번째 하이 패스트볼(144km)이 마치 떠오르듯이 날아갔고, 이를 본 오스틴은 방망이를 냈으나 헛돌아가고 말았다. 위기를 넘긴 원태인은 포효하며 기뻐했다. 반면 오스틴은 배트를 그라운드에 내동댕이친 뒤 헬멧까지 땅바닥에 투척하며 진한 아쉬움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렇지만 이제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ABS, 이른바 로봇 심판이 스트라이크 볼 판정을 했기 때문이다. 굳이 오스틴 입장에서 아쉬웠던 장면을 꼽자면 3구째 바깥쪽 스트라이크 판정이었을 터다.
허구연 KBO 총재가 ABS를 설명하고 있다. |
ABS의 도입으로 이렇게 주심과 선수 간 감정 소모가 없어졌다. 팬들은 대환영이다. 과거 투수와 타자 모두 때로는 심판을 향해 빈번하게 불만을 표출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오는 피로감도 사라졌다. 더욱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동안 스트라이크 판정으로 인해 누구보다 많은 갈등을 겪으며 스트레스를 받은 건 심판이었다. 허운 전 심판위원장은 지난겨울 ABS 및 피치 클락 적응을 위한 동계 훈련 당시 "ABS가 도입된다고 할지라도 심판은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한다. ABS가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부분을 ABS가 해주는 것일 뿐, 더 중요한 게 또 있다"면서도 "단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이제는 어느 정도 벗어날 것이다. ABS가 잘 정착한다면 큰 도움이 될 거라 본다. 심판들 역시 ABS가 정말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지금도 죽을 듯한 압박감을 받는다고 호소하며 그만두려는 심판이 있다. 그렇지만 다 살려고 하는 것인데, 그러면 안 되지 않나. ABS가 잘 정착돼 이런 스트레스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그 외에 심판이 할 일은 또 많다. 정말 성공적으로 잘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허 전 위원장의 바람대로 ABS는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있다.
'2024 신한 SOL 뱅크 KBO리그' LG-삼성전이 2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 LG 오스틴이 1회말 2사 3루에서 1타점 적시타를 날리고 출루한 후 환호하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