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클럽' 치어리더가 사라진다... 깜짝 이적·해외 진출, 화려함 뒤 숨은 애환 [류선규의 비즈볼]

류선규 전 SSG 랜더스 단장 / 입력 : 2024.04.0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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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유니폼을 입은 박기량 치어리더. /사진=두산 베어스 유튜브 캡처


지난 3월 8일 두산베어스 구단 유튜브를 통해 야구 팬들이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나왔다. 롯데 자이언츠 응원단의 간판이었던 박기량(33) 치어리더가 두산 응원단에 합류한 것이다.

2009년부터 2022년까지 13년간 롯데에서만 '원클럽' 치어리더로 활동한 그는 은퇴 고민을 하다가 두산 응원단 유니폼을 입게 됐다.


박기량 치어리더는 국내 스포츠에 치어리더라는 직업을 알리는 데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방송 출연도 자주 하고 부산 출신으로서 지역 소주 광고 모델로도 활동하는 등 인지도 면에서는 단연 '원톱'으로 인정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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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량의 롯데 응원단 시절 모습. /사진=OSEN
치어리더라는 직업이 '관중석의 꽃'으로 불리고 준연예인급의 주목을 받아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대우나 환경 등 실상은 열악하다. 구단에서 경기당 인건비를 책정해 응원 대행사에 지급하면 대행사는 치어리더에게 일당 형식으로 주거나 월급으로 지급하기도 한다. 인지도가 높은 치어리더는 월급제로 운영된다.

인건비는 구단마다 다른데 치어리더 등급에 따라 다르게 지급하는 경우도 있고 등급 구분없이 동일하게 나눠주는 경우도 있다. 치어리더 등급은 야구(스포츠) 경력을 중시하고 소셜 미디어(인스타그램 등) 팔로워 숫자를 참고하기도 한다. 과거(2000년대 전후)에는 응원단 공개 입찰에 치어리더 오디션을 한 적도 있다. 이때는 치어리더의 안무 실력이 응원단 선정을 좌우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치어리더 프로필로 평가한다.


응원단에서 인건비가 가장 높은 사람은 응원단장이고 치어리더는 그 아래이다. 응원단장은 단가도 높고 전경기에 출장하기 때문에 연 단위로 놓고 보면 수입이 어느 정도 보장이 되지만 치어리더는 단가도 낮은 데다 경기를 나눠서 나가기 때문에 수입이 적다. 그런 탓인지 응원단장의 구단이나 대행사 이동은 드문데 치어리더 이동은 잦은 편이다. 대우조건이 좋으면 다른 구단이나 대행사로 옮기는 것이다.

필자가 SK와이번스에서 응원단 업무를 담당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최고의 응원단장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직접 미팅을 하기도 했고(결과는 실패) 타 구단의 간판 치어리더를 영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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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현 SSG 치어리더. /사진=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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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량(왼쪽)-서현숙 치어리더. /사진=두산 베어스 유튜브 캡처
이렇게 이동이 잦다 보니 한 팀에서만 활동한 원클럽 치어리더는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고 있다. 최근 박기량 치어리더의 두산 이적으로 인해 이제 SK-SSG에서만 활동하고 있는 배수현 치어리더와 서현숙(두산), 이수진(삼성) 치어리더가 몇 명 없는 원클럽 치어리더로 남게 됐다.

배수현 치어리더는 1984년생으로 2003년 SK와이번스 치어로 데뷔해 지금까지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최장수' 치어리더이다. 여기에 인천 출신으로 인천 팀에서만 활동했으니 앞으로 이런 치어리더는 다시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간판 치어리더의 이동은 연쇄 작용을 만든다. A구단의 간판 치어리더가 B구단으로 옮기면, A구단 응원 대행사는 C구단의 유명 치어리더를 영입하는 식이다. 어느 구단 응원 대행사든 간판으로 내세울 만한 치어리더를 보유해야 팬들과 소속 구단로부터 인정받기 때문에 매년 응원단 인력 구성은 응원 대행사의 핵심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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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혜 치어리더가 대만 프로야구 라쿠텐에서 활동하는 모습. /사진=이다혜 SNS
치어리더들은 이제 해외로 진출하기도 한다. 지난해 3월 KIA타이거즈에서 활동하던 이다혜 치어리더가 대만 프로야구 라쿠텐 몽키스에 합류했다. 한국 치어리더가 대만 무대에 나선 첫 사례이다. 1999년생인 이다혜 치어리더는 2019년 데뷔해 경력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활발한 인터넷 방송 활동을 통해 짧은 시간에 인지도를 높였다.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것이 도움이 된 건지 대만 프로야구로 진출했고 광고 및 방송 출연 등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올해는 이다혜 치어리더를 이어 국내에서 인정받는 치어리더 여럿이 대만으로 진출했다. 그만큼 국내보다 대만이 대우 조건이 좋다고 봐야 한다.

KBO리그에서만 볼 수 있는 야구장 응원 문화는 이제 'K-콘텐츠'로 자리잡았다. 지난 달 고척돔에서 열린 'MLB 월드투어 서울시리즈'에서도 미국 메이저리그 관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기도 했다. 프로야구장에 응원단이 도입된 것은 1990년대 중반 LG트윈스가 처음이었는데 이후 한동안은 야구장이 시끄러워 경기에 방해되고 관람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부정적인 의견도 적지 않았다. 그러면서 응원단 폐지론도 제기됐고 응원단상을 외야로 옮기기도 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응원단상이 다시 내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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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치어리더들의 응원 모습. /사진=김진경 기자
KBO리그 응원 문화가 지금같이 자리잡게 된 데에는 응원단장, 치어리더, 응원 대행사 등 많은 이들의 숨은 애환이 있었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게 되면 소속팀 치어리더들은 열이면 열 모두 오열을 한다. 한 시즌 동안 더울 때나 추울 때나 팬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애정이 많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는 응원단이 원정 응원을 가면 대기실이 없어 대행사 차량이나 관중석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기도 했다. 지금은 신설 야구장이 들어서면서 원정 응원단을 위한 대기실이 구비돼 있다.

치어리더들의 국내팀 이적과 해외 진출은 이들의 근무 여건이 나아지는 데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대우 조건은 결국 시장 경제 원리에 따라 경쟁을 통해 올라가기 때문이다. 아울러 원클럽 응원단장이나 치어리더도 은퇴식, 영구결번 등 그만한 가치를 인정해 주면 좋겠다. 이를 통해 야구 비즈니스나 콘텐츠도 그만큼 개선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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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선규 전 단장.
/정리=신화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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