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정은 로봇이 하는데' 대체 왜? '오심+충격적 은폐 논란'까지, KBO 이례적 중징계 내릴까

안호근 기자 / 입력 : 2024.04.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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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심판들이 14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NC 다이노스의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경기 3회말 2사 2루에서 나온 ABS 관련 NC 측의 항의에 모여 논의하고 있다.
로봇심판, ABS(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Automatic Ball-Strike System) 시대가 도래했으나 모든 게 해결된 건 아니었다. KBO리그 심판진이 황당한 행태로 다시 한 번 팬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문제의 장면은 14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경기에서 나왔다.


NC가 1-0으로 앞선 3회말 2사 2루 이재현의 타석에서 나왔다. 앞서 김지찬이 이재학의 공에 맞아 1루에 출루했고 볼카운트 0-1에서 김지찬이 도루를 시도했다. 카운트보다는 도루 여부 자체에 더 관심이 쏠린 건 사실이었다. 이닝 교대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 원심 아웃 판정은 비디오 판독을 통해 도루 성공으로 바뀌었다.

이닝이 계속되면서 잠시 잊혀졌던 볼 카운트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중계화면상 이재학이 던진 2구는 보더라인에 걸치는 공이었지만 이때 문승훈 주심은 2구에 대해 별다른 말이나 제스처를 하지 않았다. 볼이라는 의미였다.

판정 당시엔 도루를 시도하던 터라 현장에서나 중계상으로도 시선이 도루 장면에만 쏠려 있던 게 사실이다. 이후 이재학이 볼 2개와 스트라이크 하나를 던져 풀카운트가 된 시점에서 강인권 NC 감독이 더그아웃을 박차고 나왔다. KBO가 각 구단에 지급한 태블릿 PC 상엔 2구가 스트라이크로 찍혔기 때문이다.


납득이 되지 않는 장면이다. ABS는 야구장에 설치된 레이더 기반, 카메라 기반 투구 궤적 시스템을 통해 자동으로 스트라이크와 볼을 판정하는 방식이다. 주심은 음성장비를 착용해 이 결과를 전해 듣고 직접적으로 볼 판정을 하는 게 아닌 전달자의 역할을 맡게 된다. 그런데 판정이 잘못될 수 있다는 게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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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다이노스 이재학(왼쪽)이 14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3회말 2사 2루에서 이재현에게 던진 2구째 공(노란색 네모). /사진=SBS 스포츠, TVING 중계화면 갈무리
강 감독의 항의로 4심 합의가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심판진의 대화가 중계방송을 통해 그대로 노출되며 정확한 진위를 파악할 수 있었다.

1루심을 맡았던 이민호 심판 팀장은 "안 들렸으면 안 들렸다고 사인을 주고 해야 되는데 그냥 넘어가버린 거잖아"라고 주심의 잘못에 대해 지적했다. 이에 문승훈 주심은 "지나간 건 지나간 걸로 해야지"라며 상황을 무마하려는 듯한 발언을 했다.

어딘가 석연찮은 대화 내용이다. 정황상 스트라이크 콜이 정확히 들리지 않았고 이것이 문승훈 주심이 어떠한 제스처도 취하지 않았던 배경으로 읽혔다.

이어 이민호 심판은 "음성에는 볼로 나왔는데 모니터에는 스트라이크가 찍혔다"며 "음성은 분명히 볼로 인식했다고 들으세요(하세요). 아셨죠?"라며 자신들의 잘못을 정정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져야 할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조작을 권유하는 듯한 발언이다.

실제로 이 공은 스트라이크였다. KBO 관계자는 14일 스타뉴스와 통화에서 "해당 공은 ABS 상 스트라이크로 판정된 것이 사실이다. ABS 진행 요원은 해당 판정을 스트라이크로 들었다고 했다. '심판에게만 스트라이크라는 말이 볼로 전달될 수 있냐'는 물음에 ABS 시스템을 운영하는 쪽에서는 오류가 날 확률은 너무 적다고 했다"며 "우리도 오류의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판단하고 있고, 그보단 현장에서 들린 심판들이 대화 내용을 문제로 보고 있다. 그 부분에 관해 심판들에게 경위서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리하면 유선상의 이유 혹은 심판진의 착오로 인해 스트라이크가 볼로 둔갑한 상황. 심판진이 이를 정정하거나 혹은 규정상 이미 시간이 지나서 종전 판정대로 진행을 하더라도 자신들의 착오가 있었음을 털어놨어야 하는 게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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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심판들이 14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NC 다이노스의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경기 3회말 2사 2루에서 나온 ABS 관련 NC 측의 항의에 모여 논의하고 있다. /사진=SBS 뉴스 캡처
그럼에도 이민호 심판은 "이거는 우리가 빠져나갈 궁리는 그거 밖에 없는 거에요"라며 재차 "음성은 볼이야. 알았죠? 우리가 안 깨지려면 일단 그렇게 하셔야 돼요"라고 동료 심판들을 설득했다. 자신들의 잘못을 감춰 넘어가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문승훈 주심이 "지직 거리고 볼 같았다..."라고 설명하겠다는 식으로 말하자 이민호 심판은 "'같았다'가 아니라 볼이라고 나왔다고 그렇게 하시라고 우리가 안 깨지려면"이라고 심판진의 입장을 통일시키는 장면까지 중계화면을 통해 그대로 전파를 탔다.

이후 이민호 심판은 직접 마이크를 잡고는 "방금 상황을 설명드리겠습니다. 김지찬 선수의 도루 때 투구한 볼이 심판에게 음성으로 전달될 때는 (결과가) 볼로 전달됐습니다. ABS 모니터에는 스트라이크로 확인돼 NC가 이 부분을 어필했지만, (규정상) 그 다음 투구가 이뤄지기 전에 정정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 어필 시효가 지난 걸로 판단, 현재 볼 카운트(2스트라이크 3볼)대로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KBO 관계자는 "사실 ABS가 스트라이크로 판정했는데 (현장에) 볼로 전달된다는 것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현장에서 착각해 듣지 못한지는 모르겠으나, 대응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고 봤다. 엄중히 조사할 예정"이라고 단호하게 입장을 전했다.

심지어 결과에까지 영향을 끼친 판정이 됐다. 원래대로라면 삼진으로 물러났어야 할 이재현이 볼넷으로 살아나갔고 이재학이 2사 1,2루에서 구자욱에게 2루타, 데이비드 맥키넌에게 2타점 적시타를 맞고 단숨에 3실점을 했다. 승부의 흐름이 기운 시점이었고 NC는 결국 5-12로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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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심판들이 14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NC 다이노스의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경기 3회말 2사 2루에서 나온 ABS 관련 NC 측의 항의에 모여 논의하고 있다. /사진=SBS 뉴스 캡처
결과를 차치하더라도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NC는 경기 후 해당 사안에 "구단은 4월 14일 삼성 라이온즈 대구 경기에서 나온 부분에 대해 1차로 KBO에 유선으로 강력히 항의했다. 이후 KBO에 구단 차원의 '해당 내용에 대한 사과와 적절한 조치'를 요구하는 공문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공식 입장을 전했다.

로봇심판은 몇 년간 퓨처스(2군)리그에서 시범 활용한 뒤 올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KBO리그에서 활용되고 있다. 세계 최초 1군리그에 도입된 ABS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개막 후 3주 정도가 지났지만 팬들은 열광하고 있다.

과거 심판진의 일관성 없는 스트라이크 존으로 인해 수없이 논란이 일었고 각 팀에서도, 팬들 또한 이로 인해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여전히 현장에선 ABS에 적응하는 과정이고 일부 불만도 나타나고 있다. 각 구장마다 ABS 존 설정이 다르다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팬들은 스트라이크 판정으로 시시비비가 나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대만족하고 있다. 그만큼 경기도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단순히 콜 판정에 대한 음성을 잘 듣고 이를 전달만 하면 되는 일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도루 상황이 겹쳐 나왔기에 그럴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빠르게 잘못을 인정하고 넘어갔어야 하는 게 당연했다. 그럼에도 심판진은 자신들을 향한 비판과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뻔히 보이는 거짓말로 상황을 무마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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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권 NC 다이노스 감독(왼쪽)이 14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경기 3회말 2사 2루에서 나온 ABS 관련 항의를 하고 있다.
그동안 KBO리그 심판들은 크고 작은 문제들로 팬들의 신뢰를 잃어왔다. 납득할 수 없는 볼 판정과 권위적인 태도의 행태들이 반복되며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KBO는 그때마다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했다. 실제로는 무거운 의미의 '엄중경고' 조치는 팬들 사이에서 '갓중경고'라고 희화화되기도 했다. 사실상 유명무실한 조치나 다름없다는 의미다.

이번엔 KBO가 어떤 조치를 내릴지 시선이 집중된다. 단순 스트라이크-볼 판정의 문제가 아니다. 실수를 한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 첫 번째, 더 큰 문제는 자신들의 실수를 은폐하기 위해 경기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는 것이다. 그 대화 과정에서 누구도 반발하지 않았다는 것도 크나 큰 잘못이다. 이미 팬들 사이에서는 '조작'이라는 단어까지 나오고 있다.

2024 KBO 규약집 '제14장 유해행위'에는 승부 조작과 관련한 내용이 기재돼 있다. 청탁을 받고 이 같은 행위를 했을 경우 제150조 [부정행위에 대한 제재]에는 영구 또는 무기 실격처분을 내릴 수 있다고 적혀 있는데, '총재는 전항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부정행위 가담의 정도, 사안의 경중 및 정상을 참작하여 제재를 감면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청탁을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은 보이지 않지만 '조작'과 관련해서는 자유로울 수 없기에 가벼운 징계로 넘어가기는 어려워 보이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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