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dict
오프로더와 SUV, 여기에 미국식 럭셔리까지 포기하지 않은 차
Good
- 랜드로버보다 터프한데, BMW보다 고요하고, 벤츠보다 저렴하다
- 아시아나 유럽계 자동차와는 다른 미국식만의 섬세한 럭셔리 감각이 있다
Bad
- 매킨토시는 그럴 듯 하지만 기대만큼 역할은 해내지 못한다
- 최대토크가 터지는 4천 rpm에 도달하면 '그랜드'함을 잃어 버린다
Competitor
- 아우디 Q7 : '이번달 할인'은 다시 올 수 없는 기회다
- 토요타 하이랜더 : 거의 모든 면에서 더 차분하지만 내구성은 훨씬 더 압도적이다

누가 뭐라해도 SUV의 고향은 미국이다. 그리고 SUV의 근본은 지프라는 것에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7개의 슬롯형 그릴, 각진 휠 하우스와 펜더라인은 이 차의 헤리티지가 어디로부터 시작했는지 정확히 보여준다. 전장의 정통 오프로더라는 압도적 브랜드 컬러를 바탕으로 '럭셔리' 키워드에 방점을 찍은 차가 바로 지프 그랜드 체로키 L이다.
북미 인디언 부족 이름 '체로키'를 차명으로 삼은 그랜드 체로키 L은 이름처럼 미국식 색채를 듬뿍 담은 차다. 심지어 차문 옆에 성조기 배지까지 달았다. '테토남' 향수를 쏟아 부은 듯 강렬한 차체는 직선과 면을 강조해 크고 웅장한 SUV로서 근사한 면모를 발휘한다.


지프 그랜드 체로키 L은 전장 5220mm로 길고 1795mm 전고는 멀티 챔버 에어서스펜션으로 차고를 올 릴 수 있어 웬만한 차들은 내려다 볼 수 있을 정도다. 축거도 3090mm에 이를 정도로 길기 때문에 도로에서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물론 실내 공간도 축거만큼이나 크고 넓다. 사실 이런 제원과 상관없이 이 차를 맞닥뜨리면 위압감이 들기 마련이다. 이런 첫 인상은 대체로 미국차 특히 북미형 SUV들이 흔히 지향하는 '남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요소로 반영된 디자인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디테일을 강조하기보다는 큰 덩어리의 묵직함을 앞세우는 전략인 것.

반면 인테리어는 전혀 다른 전략으로 반전의 매력이 돋보인다. 시트는 브라운 톤의 가죽으로 두르고 도어와 대시보드는 트림 전체를 인조가죽과 크롬 메탈이 도드라지도록 배치했다. 특히 도어트림과 시트에는 사각형 블록의 퀼팅 기법을 반영해 한층 더 고급감을 끌어올렸으며, 손이 닿는 곳곳에는 마찬가지로 인체공학적인 유선형 디자인을 둬 편안한 감각적 배려를 담았다.
지프 그랜드 체로키 L은 특히 고급감을 끌어올리기 위해 소재와 함께 인포테인먼트 요소도 신중하게 골랐는데, 그 대표적인 키워드는 '매킨토시'다. 미국은 카오디오의 세계 최대 시장 답게 AV 유닛과 튜닝 부문에서 세계적인 수준을 보여주는데 특히 매킨토시는 하이엔드급 AV 시장에서 오랜 시간 최상위 브랜드파워로 잔뼈와 굵은뼈 모두 튼튼한 브랜드다. 개인적으로는 그랜드 체로키 L이 처음 등장했을 때 가장 파격적으로 느꼈던 요소였다.


지프 그랜드 체로키 L의 백미는 2열이다. 넓은 공간감은 물론 탁 트인 시야 개방감이 글래스 루프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아이맥스급이기 때문이다. 유럽형 벤치 시트보다는 북미형 독립식 캡틴 시트라는 점도 반갑다. 3열은 구색만 갖춘 게 아니라 본격적으로 앉을 만 하도록 만들었다. 이 차의 이름 뒤에 붙은 'L'이 정확히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는 순간이다.
지프 그랜드 체로키 L의 파워트레인은 3.6L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이다. 북미에서는 펜타스타 엔진으로 유명한데, 자연흡기부터 터보차저와 레이싱 엔진까지 범용성이 확인된 엔진이다. 여기에 ZF제 8단 변속기를 지프 자체 튜닝으로 개선해 엔진의 힘을 네바퀴로 보낸다. 드라이브 모드는 오프로더 답게 거의 모든 지형을 담았다. 자갈, 모래, 진흙은 물론 격한 내리막길까지 지형모드를 지원한다. 여기에 필수적인 에어 서스펜션도 커다란 구경을 내비치며 휠 하우스 안쪽을 채웠다. 하체 셋업 측면에서는 가히 역대급이라 자랑해도 할 말은 없다.

이쯤 됐으면 눈치챘겠지만, 지프 그랜드 체로키 L의 최고 장점은 화려한 '장비빨'이다. 액티브 드라이빙 어시스턴트, 적외선 카메라를 이용한 나이트 비전, 운전자 졸음 감지 시스템, 조수석 앞 별도의 스크린, 오토 디밍 디지털 룸미러, 뒷좌석 모니터링 카메라는 웬만한 초호화 플래그십 세단에서도 전부 갖추기 어려운 장비들이다. 심지어 1억이 갓 넘는 대형 SUV 모델이라는 점은 감안하더라도. 이렇게 갖춰진 장비들만으로도 지프 그랜드 체로키 L를 선택하기 충분한 요소들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다.
이렇게 살펴보고 나니 주행성능에 대한 호기심이 더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터보차저로 힘을 쥐어 짜내기보다는 최근 정말 보기 힘들어진 3.6L V6 자연흡기 엔진과 토크 컨버터식 8단 변속기의 조합은 실패하기가 더 힘든 유닛이 아니던가.

시승구간은 서울부터 강원도 속초를 왕복하는 700여 km의 장거리 구간이다. 중간엔 구불거리는 국도까지 코스에 넣어 본격적으로 알아봤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북미형 SUV의 달리기 전형을 맛볼 수 있었다. 격하게 꺾이는 코너링 구간에선 민첩하게 반응하지 못했지만 쭉 뻗은 고속도로에서 지프 그랜드 체로키 L은 그야말로 천상계의 하모니를 발휘한다. 진동은 꽉 잡아 눌렀고, 소음은 들이칠 틈이 없다. 시야는 시원한데다 엔진의 힘은 넘치니 달리는 스트레스가 생겨날 리 만무하다. 같은 속도로 달리더라도 지프 그랜드 체로키 L은 맛이 달랐다. 공차중량2325kg으로 적지 않은 무게지만 차급을 생각한다면 손색은 없을 터. 눈 여겨 볼 점은 전후 좌우 밸런스가 주행 중 어느 한 순간에도 치우치지 않을 정도로 균형이 잡혀 있었다.
드라이브 모드는 지프 그랜드 체로키 L이 독일 경쟁 모델과 확실히 차별화할 수 있는 포인트다. 마치 오프로드 백과사전처럼 갖춘 드라이브 모드는 지형에 걸맞게 바꿔가며 압도적인 실력을 발휘한다. 임도는 우습고 웬만한 산길은 거침이 없다. 명성에 딱 들어맞는 주행성능을 어디서든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지프 그랜드 체로키 L은 럭셔리 SUV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지프 브랜드의 강력하고 분명한 신호다. 그러면서도 지프 본연의 오프로더 헤리티지와 북미형 SUV들이 가진 특징적인 주행성능을 갖춰 개성이 강한 차다. BMW나 메르세데스 벤츠 그리고 볼보 등 유럽계 자동차나 토요타, 현대차그룹 등 아시아계 대형 SUV들과는 분명히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프로드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패밀리 SUV로 차고 넘치는 매력과 가치를 가진 차이기에 누구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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