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벤 애플렉이 주연에 연출까지 맡은 정치 스릴러

납치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은 주로 가족이 납치된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그린다. 주인공은 직접 몸으로 뛰어들거나 지략을 발휘해 범인을 추적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짐승들’은 조금 다르다. LA 시장 후보 마크 킴벌(벤 애플렉)은 선거를 코앞에 두고 아들을 납치했다는 범인의 전화를 받는다. 그런데 사건 해결에 나서려는 순간, 아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다. 납치 사건이 이렇게 빨리 끝난다고? 그렇다. 이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는 따로 있다.
‘짐승들’은 벤 애플렉이 마이클 조던과 나이키의 계약 과정을 그린 영화 ‘에어’(2023)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이번에도 연기와 연출을 겸한다. 감독 데뷔작 ‘곤 베이비 곤’(2007)부터 범죄와 도덕적 갈등을 다뤄온 그가 선택한 장르는 정치 스릴러다. 연출과 주연에 더해 공동 각본과 제작을 맡았고, 그의 오랜 파트너인 맷 데이먼도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다. CJ ENM의 미국 자회사 피프스시즌(Fifth Season)도 공동 제작에 참여했다.
‘짐승들’의 납치 설정은 에드 맥베인의 경찰 소설 ‘킹의 몸값’(1959)을 원작으로 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천국과 지옥’(1963)과 스파이크 리 감독의 ‘천국에서 지옥까지’(2025)를 연상시킨다. 두 작품은 부유한 인물의 자녀를 납치하려다 엉뚱한 아이를 납치하는 상황을 통해 계급 문제와 도덕적 딜레마를 다룬다. 반면 ‘짐승들’은 시장 선거를 앞둔 정치인 가족을 중심에 놓고 도덕적 딜레마뿐만 아니라 인종, 계급, 이민자 문제 등 사회적 쟁점을 폭넓게 다룬다.

‘짐승들’에서 마크의 아들로 착각해 납치된 아이는 마크 가족과 연관된 불법체류자의 아들이다. 아들의 납치 사실이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비밀 해결사까지 고용했던 마크는 정작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자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다. 납치된 아이를 외면하는 것은 그동안 내세워온 정치적 신념에 어긋나지만, 납치범이 요구한 700만 달러는 선뜻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해결사 데일(질리언 앤더슨)은 마크에게 경찰에 신고하거나 몸값을 주는 방법 외에 세 번째 방법이 있다고 제안한다.
이후 영화는 납치 사건에 대응하는 마크와 주변 인물들의 입장을 따라간다. 오로지 당선을 위해 정당을 나와 무소속으로 출마한 마크, 아들과 남편에게 소외감을 느끼는 아내 애비게일(케리 워싱턴), 마크의 당선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선거 참모 샘(스티븐 연), 마크보다 우위에 서서 상황을 통제하는 해결사 데일(질리언 앤더슨), 아들을 구하려는 불법체류자 라몬(루이스 헤라르도 멘데스)까지. 영화는 인물들 사이에 의심을 키우며 위기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들의 민낯을 비춘다.
주요 등장인물 가운데 누가 옳고 그른지를 쉽게 단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관객은 제목 ‘짐승들’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질문하면서 영화를 보게 된다. 마크는 해결사 데일이 제시한 세 가지 선택지를 두고 “협상력도 중요하지만 옳고 그름도 따져야 한다. 인간은 짐승과 달리 품위가 있다”고 말한다. 과연 마크는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을까. 그가 고심 끝에 내린 선택은 어떤 결과를 불러올까. 영화는 이 질문을 통해 인간의 품위와 도덕적 책임이 위기 앞에서도 지켜질 수 있는지 묻는다.

납치 사건을 액션 스릴러가 아닌 정치 스릴러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짐승들’은 벤 애플렉의 장기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들을 다루는 방식이나 납치범이 모습을 드러내는 후반부 연출은 아쉽다. 마크에게 변호사 시절 앙심을 품은 인물이 범인이라는 단서는 초반부터 제시되지만, 정작 후반부에서는 범행 동기와 전모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벤 애플렉은 맷 데이먼과 제니퍼 가너를 주연으로 이 영화를 준비하다가 ‘천국에서 지옥까지’와 줄거리가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고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이후 프로젝트를 재개하면서 시나리오를 대폭 수정하고 직접 주연까지 맡았지만, 엉뚱한 아이가 납치된다는 핵심 설정은 에드 맥베인의 원작을 각색한 두 영화와의 유사성을 여전히 드러낸다.
LA 시장 후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짐승들’은 선거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해관계와 이민자 문제를 엮어 시의적절한 메시지를 던진다. 다만 의욕적으로 제기한 문제의식을 끝까지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풀어내지는 못했다. 정치 스릴러로서의 완성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지만 벤 애플렉의 무게감 있는 연기와 케리 워싱턴, 질리언 앤더슨, 스티븐 연의 호연은 눈여겨볼 만하다.
정유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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