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래 뱃속이란 밀폐된 공간서의 탈출이 주는긴박감과 신박함 찰출 원동력이 되는 아버지와의 기억...60분내에 빠져나올까?

바다의 거대 생물은 해양 생존 스릴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포의 대상이다. 이 장르의 상징적인 존재가 ‘죠스’(1975)의 상어라면, 거대 오징어나 고래도 종종 소재로 등장해 왔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시리즈 ‘빌로우’처럼 거대한 오징어를 연상시키는 해양 생물을 내세운 작품도 나왔다. 인간이 바다 생물과 맞서거나 도망치는 구도는 익숙하지만,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생존 방식과 공포의 양상이 달라진다는 점이 이 장르의 매력이다.
상어를 소재로 한 오락 영화가 꾸준히 만들어져 온 것과 달리, 고래를 다룬 영화는 모험물의 성격이 강했다. 거대한 고래를 자연의 위대함을 상징하는 존재로 그린 고전 ‘모비딕’의 영향인지, 고래 영화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돌아보는 이야기가 많았다. ‘웨일폴: 고래에 먹힌 남자’(이하 ‘웨일폴’)는 생존의 긴박함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고래를 단순한 포식자로만 그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존 고래 영화의 정서를 잇는다. 최근작 ‘킬러웨일: 침묵의 습격자’(2026)가 석호에 갇힌 두 여성과 범고래의 대결을 그린 킬링타임용 생존 스릴러라면, ‘웨일폴’은 거대한 향유고래에게 잡아먹힌 남자의 사투에 가족 드라마를 결합해 장르의 외연을 넓힌다.
‘고래에 먹힌 남자’라는 부제만 들으면 흔한 생존 스릴러를 떠올릴 법하다. 고래와 싸우는 것도 아니고, 고래에게 먹힌 남자라니 뱃속에서 탈출하는 이야기란 말인가. 맞다.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머물렀다는 성경 속 예언자 요나가 떠오르기도 하고, 제페토 할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바다 괴물의 뱃속으로 들어가 불을 피워 탈출한 피노키오의 이야기도 생각난다. (원작 동화에서 피노키오와 제페토를 삼킨 존재는 상어와 비슷한 거대한 물고기였지만,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는 거대한 고래로 바뀌었다.)

‘웨일폴’은 주인공 제이(오스틴 에이브럼스)의 귀향으로 시작한다. 바다에서 죽음을 맞은 아버지 밋(조시 브롤린)의 1주기를 맞아 고향 몬터레이로 돌아온 제이는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의문과 자신을 괴롭혀 온 아버지와의 갈등을 풀기 위해 아버지의 유해를 찾아 나선다. 여러 악조건을 헤치고 심해에 도달하지만, 거대한 향유고래에게 산 채로 먹히고 만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초반 30분이다.
영화는 고래 뱃속에 갇힌 제이가 산소탱크로 버틸 수 있는 60분의 시간을 제시하며 본격적인 생존 스릴러로 전환한다. 영화가 그리는 고래 뱃속은 동화에서 본 것처럼 넓은 동굴 같은 공간이 아니다. 식도에서 위로 이어지는 좁고 구불구불한 통로와 거대한 내장기관 사이에 끼인 제이의 모습은 폐쇄 공포에 가까운 긴장감을 자아낸다. 브라이언 더필드 감독은 근접 촬영과 공간을 흔드는 움직임, 물소리와 호흡을 활용해 제이가 느끼는 당혹감과 공포, 극한의 신체적 고통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된 SF 스릴러 ‘누구도 널 지켜주지 않아’(2023)에서 대사보다 이미지와 소리로 긴장감을 조성했던 더필드 감독은 심해 공포 스릴러 ‘언더워터’(2020)의 각본에도 참여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고래 뱃속이라는 비현실적인 공간을 실감 나는 공포의 장소로 바꾸는 한편,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을 더해 장르적 재미와 감정적 서사를 함께 끌어올린다. 탈출을 위한 마지막 선택 역시 예상 밖의 방식으로 생존의 긴박함을 높인다.

제이가 탈출을 포기하지 않도록 붙드는 감정의 생명선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다. 영화는 탈출 시도와 과거의 기억을 교차하며 아버지의 죽음과 부자 관계의 갈등을 풀어나간다. 이 과정이 생존 스릴러의 긴박함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감정적 과잉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제이가 아버지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탈출 방법을 찾고, 나아가 고래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달라진다는 점에서 영화는 생존을 위한 사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영화의 대부분을 혼자 이끌어 가는 오스틴 에이브럼스의 연기도 눈여겨볼 만하다. 고래 뱃속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극한의 신체적 고통을 표현하는 동시에 아버지를 향한 원망과 그리움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도 드러낸다. 드라마 ‘유포리아’로 얼굴을 알린 그는 ‘울프스’(2024), ‘웨폰’(2025), ‘레지던트 이블: 0번째 밤’(2026) 등 다양한 장르 영화에 출연하며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는 젊은 배우다. 극을 온전히 감당할 줄 아는 카리스마, 신체 연기와 감정 연기를 너끈히 소화했다는 점에서 배우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다.
‘웨일폴’은 고래 뱃속이라는 극단적인 생존 상황을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 상실과 관계 회복의 이야기로 확장한 작품이다.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투는 긴박함과 신박함을 오간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자극 추구형 생존 스릴러를 예상한다면, 가족 서사가 완급을 조절하는 이 생존 스릴러가 기대와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고래의 내부를 시각화한 볼거리와 주인공의 사투를 입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생존 스릴러다. 어두운 심해의 압박감과 고래 뱃속의 폐쇄감을 온전히 느끼려면 극장에서 관람하기를 권한다.
정유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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