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직 형사 서준은 부산의 한 건설 현장에서 성실하게 산다. 아내와 한푼 두푼 돈을 모아 내 집 마련 꿈을 이루는 것도 코 앞이다. 그러던 어느날. 전화 한 통이 단란한 행복을 한순간에 무너뜨린다.
보이스피싱 조직에 당해 건설현장 노동자들이 피땀 흘려 모은 돈들이 순식간에 강탈당한 것. 딸 수술비부터 아파트 중도금까지 30억원이 사라져버렸다. 뿐만 아니다. 서준은 아내가 같은 보이스피싱 조직에 당해 7000만원을 송금한 뒤 교통사고까지 당하는 불운을 겪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중국에 거점을 둔 보이스피싱 조직을 잡기란 쉽지 않은 일. 서준은 마약수사를 했던 경험을 살려 자신이 직접 보이스피싱 조직을 잡기 위해 움직인다. 마침내 중국 선양에 위장신분으로 잠입한 서준. 그는 개인 정보 명단과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철저한 시나리오 작업, 전화를 자신들쪽으로 돌리게 만드는 해킹앱, 각종 신분으로 위장하는 대규모 콜센터, 피해자가 알아차리기 전에 미리 돈을 찾는 인출책, 중국돈과 바꿔주는 환전소 등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대규모 보이스피싱에 놀란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희망과 공포를 파고드는 목소리의 주인공이자 기획실 총책인 곽프로를 만난다. 바로 아내를 속인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다.
과연 서준은 보이스피싱 조직을 궤멸시키고 강탈당했던 돈을 되찾을 수 있을까.
'보이스'는 '무서운 이야기' 등을 같이 연출해온 김곡 김선 형제 감독의 작품이다. 공포영화를 많이 만들었던 감독들의 신작이라 그런지, '보이스' 얼개는 공포영화와 닮았다. 희망과 공포, 공감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범죄인 보이스피싱이 소재여서 더 그런 듯 하다.
온갖 욕망이 뒤틀리며 희망을 속삭이는 보이스피싱 콜센터. 그곳을 찾아나서는 사람. 마침내 만나게 되는 악의 실체. 그 악과 처절하게 맨 몸으로 맞서는 남자. 마치 패쇄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밀실 공포영화 같다. 보이스피싱은 누구나 겪어봤을 경험이지만 동시에 실체가 불분명한 유령 같은 악이다. '보이스'는 그 유령 같은 악을 찾아나서 관객에게 보여주는 영화다. 유령의 정체를 까발리고 경고하고 응징하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보이스'는 장르적인 성격과 교훈적인 성격이 분명하다. 보이스피싱이 어떻게 준비되고 어떻게 파고드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그렇게 경고한다. 그리고 응징한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에게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직접 말한다. 위로한다. '보이스'는 이 목적에 충실하다.
이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서 '보이스'는 몇 가지를 포기했다. 인과는 종종 건너뛰고, 무리수도 더러 있다. 그럼에도 '보이스'는 다소 거칠지만 교훈과 대리만족이란 목적지에 잘 도착했다. 그건 이 영화가 현실을 기반으로 한 공포영화며, 복수극이며, 교훈극인 동시에 판타지인 까닭이다.
상상력으로 구현된 보이스피싱 콜센터는 '보이스'의 8할이다. 희망을 속삭이고, 공포를 파고들어 단숨에 사람을 현혹시키는 악의 비밀기지. 이런 악의 장소가 자본주의에 충실한 계급 사회란 것도 아이러니다. 계급에 따라 층층으로 나뉘는 이 악의 장소를, 서준이 엘리베이터 통로로 기어올라가는 것도 이채롭다. 건설현장 노동자가 추악한 악의 자본주의 피라미드를 맨 손으로 기어올라 맞서 싸운다. 판타지다. 엘리베이터 통로에서 벌어지는 액션이 지옥에서 한 줄 거밋줄에 매달리려는 아귀 다툼처럼 보이는 것도 이 영화가 판타지이자 공포영화라는 걸 드러낸다.
서준을 맡은 변요한은 열심히 했다. 몸을 집어던진다는 표현을, 그대로 스크린에 구현한다. 보이스피싱 조직 기획실 총책인 곽프로를 연기한 김무열은 좋다. 김무열의 연기로 추레한 콜센터가 마치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속 욕망의 장소처럼 바뀐다. 그의 얄미운 장르 연기가 단조로운 이 영화에 색깔을 불어넣었다. "보이스피싱은 공감이다"라는 뻔뻔한 대사를 천연덕스럽게 형상화해 악을 실체화했다.
'보이스'는 교훈과 대리만족, 두 가지 목적에 충실한 인포테인먼트 영화다. 알면서 당하는 건, 희망과 공포를 파고들기 때문이다. 이 영화도 비슷하다.
9월1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전형화 기자 aoi@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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