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리우드 스타 톰 크루즈의 신작 '디거'가 흥행 참패 이후 뜻밖의 재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과 영국 등 유력 매체들에 "숨은 걸작"이라는 칼럼이 잇따라 실리면서 영화를 둘러싼 논쟁에 다시 불이 붙었다.
'레버넌트''버드맨'등으로 두차례나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고 한차례 작품상을 받은 멕시코 출신의 거장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 감독이 연출한 '디거'는 석유 재벌 디거 록웰(톰 크루즈 분)의 시추 사고가 기후 재앙으로 번지는 이야기를 그린 블랙코미디다.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디거'는 2일 북미 개봉 첫 주말 약 800만 달러(한화 약 106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제작비는 약 1억6000만~1억8000만 달러(한화 약 2138~2405억 원)로 추산되기 때문에 제작비 규모를 고려하면 역대 최악의 흥행 실패작 중 하나로 기록될 가능성이 거론됐다. 톰 크루즈 주연작 중 19년 만의 최저 오프닝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봉 당시 평단의 반응은 로튼 토마토에서 53%, 메타크리틱에서 43% 정도에 그쳐 평단의 호불호가 크게 엇갈렸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14일(현지시간) 소설가 제이슨 그린의 기고 칼럼 '톰 크루즈의 대형 실패작은 숨은 걸작'을 게재했다. 그린은 "'디거'는 최악의 영화로 교묘하게 위장한, 기후 위기를 다룬 역대 최고의 영화일지 모른다"고 평가했다.
그린은 처음엔 이 영화를 볼 생각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예고편 속 노인 분장을 한 톰 크루즈의 석유 재벌 연기가 "공허하고 거슬리고 재미없어 보였다"는 것. 실제로 초반 30분은 예상대로였지만, 두 시간 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는 마음이 움직였다고 했다. 그는 "'디거'는 '나쁜 예술'이 왜 필요한지를 너무나 정확하게 그려낸 탓에 나쁜 예술로 오해받기 쉽다"고 짚었다.
한 평론가가 "두 시간 동안 튜바 안에 갇힌 기분"이라고 혹평한 데 대해서도 그린은 "틀린 말은 아니다"라며 "기후 위기 앞에서 우리의 분노와 공포가 늘 그렇게 시끄럽고 압도적이기에, 바로 그 점에서 영화는 성공했다"고 반박했다.
영국 가디언의 시안 케인 기자도 앞서 "오해받은 걸작"이라는 칼럼을 냈다. 영화를 두 번 봤다는 케인은 "지금껏 본 기후 위기 소재 픽션 가운데 최고"라며 "시간이 지나면 재평가될 운명"이라고 했다.
미국 IT 전문지 와이어드는 '모두가 디거를 싫어한다, 그래서 완벽한 기후 영화'라는 칼럼을 실었고, 할리우드 매체 데드라인은 '파이트 클럽', '시민 케인'과 함께 '디거'를 '흥행에 실패한 위대한 영화 20편'에 올렸다.
독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뉴욕타임스 칼럼에는 55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독일의 한 독자는 "개봉 첫날 밤 극장에 관객이 4명뿐이었다"며 "우리의 실패를 너무 잘 그려내 몹시 불편했다. 언제든 추천하겠다"고 했다. 또 다른 독자는 "관객 3명이 크레딧이 올라갈 때 서로를 돌아보며 '와'라고 했다"고 전했다. "최악의 영화 중 하나이거나 가장 의미 있는 영화 중 하나다. 나는 후자"라는 댓글도 공감을 얻었다.
국내에서도 3일 개봉했고 톰 크루즈가 13번째 내한하며 홍보에 나섰으나 12일까지 10만 관객을 못넘긴 상태다.
반전을 지키려 개봉 전 홍보에서 핵심 설정을 숨긴 것이 오히려 관객을 놓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케인은 "직접 가서 보는 게 맞을 것"이라고 권했다. 앤 해서웨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등 할리우드 동료들도 SNS에 잇따라 지지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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