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SG 랜더스 제이미 로맥(36)이 유니폼이 아닌 흰색 셔츠 차림으로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인천에서의 5년 생활을 되돌아보면서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했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로맥은 여러 의미있는 기억들을 소환하며 자신의 야구 인생의 마지막을 되짚었다.
로맥은 3일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유니폼이 아닌 셔츠를 입었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큰 것 같다. 셔츠를 입음으로서 야구 인생을 끝내고 일반인의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고 말문을 열었다.
로맥은 지난달 31일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그는 지난 2017년 SSG(당시 SK)에 입단해 5시즌 동안 장타력과 수비실력을 겸비한 중심타자로서 활약을 해왔으며, 통산 626경기에 출장해 타율 0.273, 610안타, 155홈런, 409타점을 기록했다. 특히 2018년에는 홈런 43개, 107타점을 기록하면서 팀의 네 번째 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동시에 로맥은 통산 155개의 홈런으로 SSG 역대 외국인 선수 최다 홈런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타이론 우즈(174개)와 제이 데이비스(167개)에 이어 역대 KBO 외국인 선수 전체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은퇴를 결심한 이유에 대해서는 "작년에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면서 감정적으로, 멘탈적으로 힘든 게 있었다. 둘째를 3월에 가졌는데 8개월 동안 떨어져 있다는 것도 컸던 것 같다. 두 아들을 와이프에게 맡겨두는 게 힘들었다. 올해 들어오면서 마지막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제2의 인생을 설계해야 한다. 로맥은 "일단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남편의 역할에 충실할 예정이다.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다양한 것들을 생각하고 있지만, 여행을 최대한 덜 하는 방향으로 캐나다에 돌아가 정착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5년의 한국 생활 동안 뜻깊은 기억이 많다. 그에게 있어서 2018년 한국시리즈 우승은 잊을 수 없다. 로맥은 "한국시리즈를 우승했던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1점 리드에서 1루에 서 있었는데, 9회 김광현이 불펜에서 뛰어나왔을 때 놀랐고 소름이 돋았다. 9회말을 정말 잘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한국 10개월 시즌이 정말 긴데, 다 같이 엄청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남는다. 스페셜한 팀이었다. 그 기억이 많이 남는다"고 회상했다.
2019 올스타전도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다. 당시 로맥은 '인천상륙작전 맥아더 장군'을 연상케 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여 '로맥아더'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그는 "팬들이 투표를 굉장히 많이 해주셔서 감사했다. 가족들이 직접 창원에 와서 기억에 남는다. 그때 당시 영상과 사진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런 게 팬서비스라는 것을 알게 됐다. 맥아더 장군 퍼포먼스도 재밌었다. 홍보팀과 마케팅팀이 하라고 강요했는데(웃음), 팬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강요해주신게 오히려 감사하다"고 웃어보였다.
의미있는 홈런 기억도 있다. 로맥은 "2018년 플레이오프 5차전 넥센(현 키움)에서 브리검을 상대로 3점 홈런을 친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3점차로 팀이 지고 있는 상태였는데, 실책으로 내 타석이 돌아왔다. 좋은 공이 들어왔는데 홈런을 쳐서 동점이 됐다. 내 커리어에 가장 중요한 홈런 아니었나 싶다. 그 뒤로 경기 상황이 재밌게 전개됐던 기억도 있다"고 돌아봤다.
로맥은 KBO리그 생활에 만족해했다. 그는 "한국에 오게 된 걸 항상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게 다른 야구를 눈뜨게 해준 곳이다. 미국에선 암묵적 룰로 개성을 드러낼 기회가 많지 않다. 한국에선 구장 분위기도 너무 즐거웠다. 코로나19 때 KBO리그가 미국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미국 선수들에게 개성을 표출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젠 미국 야구도 KBO리그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그러면서 KBO리그가 더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도 전했다. 로맥은 "개선해야 발 부분이 있다면 멘털 아닌가 싶다.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할 필요도 있다. 트레이 힐만 감독의 성공 이유는 '결과는 내가 책임진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동료들에게도 '과정에 집중하되,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결과는 놓아주라'고 조언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로맥은 "여기서 보낸 5년은 내 커리어 최고의 순간이었다. 야구 뿐만 아니라 인천에서 쌓은 우정에 너무 감사하다. 계속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했다. 인생을 변화시킨 순간이었다"면서 "경기장에 걸려있는 내 유니폼, 보내주신 선물과 편지 너무 감사하다.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를만큼 감사하다. 평생 고마움 간직하겠다"고 거듭 감사함을 전했다.
인천 송도에서 지내는 동안 살갑게 대해준 이웃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로맥은 "처음 송도에 온 후 1~2년에는 팬들로부터 사인 요청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음식점이나 카페에서도 '제이미 안녕'이라며 날 한 명의 주민처럼 대했다. 정말 편하게 해주셨다. 인천은 제2의 고향이다"라고 말했다.
로맥은 6일 고국 캐나다로 돌아간다. 당분간 뚜렷한 계획 없이 쉬면서 가족과 함께 지낼 계획이다. 그는 "사우나를 좋아했는데 엄청 그리울 것 같다. 사람은 습관의 동물인데 이제 그 습관이 없어질 것 같다. 사실 애기들 쫓아다니고 기저귀를 가느라 샤워할 시간도 없을 것이다"며 유쾌하게 기자회견을 마쳤다.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