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A 타이거즈가 지난해 12월 FA로 영입한 나성범(33)의 보상 선수로 좌완 투수 하준영(23·NC 다이노스)이 선택되자,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지난해 KIA 불펜에서 풀타임을 치렀다 싶은 좌완은 이준영(30)과 장민기(21)뿐이었고, 장민기는 국군체육부대(상무) 입대를 신청했기 때문. 2020년 팔꿈치 수술을 받고 복귀를 준비하던 하준영은 KIA 불펜에 힘이 될 자원으로 언급됐다.
장정석 KIA 단장은 시즌 전 스타뉴스와 통화에서 하준영을 묶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남은 선수들이 좌우 스플릿에 상관없이 잘해줄 것으로 믿었다. 그리고 정해영(21), 전상현(26), 장현식(27)이 주축이 된 KIA 불펜진은 7월 29일 경기까지 평균자책점 리그 4위(4.03)를 기록하면서 그 믿음에 어느 정도 보답 중이다.
그렇다고 좌완 불펜의 존재가 유명무실해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KBO리그에는 뛰어난 좌타자들이 즐비하고 그들을 막기 위한 LOOGY(Lefty One-Out GuY) 즉 좌완 스페셜리스트는 꼭 필요하다. 만루 위기에도 든든한 LOOGY가 KIA에도 있다. 1군에 유일하게 남은 좌완 불펜 이준영이 그런 존재다.
지난 28일 광주 NC전이 대표적인 장면이다. 이준영은 KIA가 2-4로 뒤진 6회초 2사 만루 상황에서 장현식을 대신해 등판했다. 상대는 리그를 대표하는 좌타자 박민우. 이준영은 그런 박민우를 공 3개로 간단히 2루수 땅볼 처리하며 위기를 끝냈다.
29일 광주 SSG전도 마찬가지였다. KIA가 8-2로 앞선 7회초 2사 1루에서 양현종을 대신해 올라와 슬라이더 4개로 좌타자 최지훈을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냈다. 지난달 25일 잠실 두산전 ⅔이닝 1실점 이후 9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면서 평균자책점 1점대도 눈앞으로 다가왔다.

이준영의 기록과 구위가 눈에 띌 정도로 놀라운 것은 아니다. 42경기 1승 무패 8홀드 평균자책점 2.02로 표면 성적은 훌륭하다. 20이닝 이상 던진 불펜 투수 중 평균자책점 리그 8위이자 KIA 팀 내 1위. 하지만, 22⅓이닝 16볼넷 16탈삼진, FIP(수비 무관 평균자책점) 4.67, WHIP(이닝당 출루 허용률) 1.39로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가장 자신 있는 무기인 슬라이더를 활용해 장타를 억제하는 피칭을 하면서 실점하지 않는 최고의 결과를 내고 있다. 야구 통계 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이준영의 구종 구사율은 직구 40.3%, 슬라이더 59.2%로 슬라이더 비중이 높다. 스트라이크존 중앙으로 꽂아 넣기보단 경계선을 공략하며 빗맞은 타구를 유도한다. 우타자를 상대로는 몸쪽 깊숙이 과감하게 질러 들어가는 피칭도 주저하지 않는다.
KBO 구단의 한 전력분석원은 "보더라인 피칭을 할 경우 볼넷이 늘어날 수 있지만, 인플레이 타구와 피홈런 확률도 떨어진다. 이준영 역시 주 무기인 슬라이더로 장타를 억제하는 피칭을 한다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실점을 억제하는 최선의 투구로 이준영은 올 시즌 리그에서 4번째로 적은 승계 주자의 득점율(15.6%)을 기록하고 있다. 무려 32명의 승계 주자가 있었지만, 홈을 밟은 것은 5명에 불과하다. 리그 정상급 마무리 고우석(24·LG)과 비슷한 수치(15.4%)이며, 30명 이상의 승계 주자를 경험한 불펜 중에서는 단연 압도적이다(두 번째는 LG 정우영의 26.3%).
흔히 좋은 불펜 투수가 될 요건으로 빠른 구속, 정교한 제구를 떠올린다. 확률적으로 본다면 빠른 공과 정교한 제구를 지닌 투수들이 롱런할 가능성이 크지만, 모두가 그런 재능을 타고난 것이 아니다. 올 시즌 KBO리그에는 그 두 가지를 지니지 않았음에도 좋은 성적을 기록하는 불펜 투수들이 많다. 각자 자신이 가진 최고의 무기로 최선의 피칭을 하면서 팀에 기여하고 있다. 프로 입단 8년 차에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내고 있는 이준영도 당당히 그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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