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현이의 선두 타자 홈런이 막혀 있던 걸 뚫어준 것 같다."
52타수 6안타, 팀 타율 0.115. 와일드카드(WC) 결정 2경기에서 보여준 한숨이 절로 나오는 삼성 라이온즈 타선의 성적표였다. 투수진의 호투에도, 1승을 안고 시리즈를 시작했음에도 자칫하면 탈락할 뻔 했던 이유였다. 그 타순의 혈이 제대로 뚫렸다.
이재현(22)은 9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SSG 랜더스와 2025 신한 SOL뱅크 KBO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준PO) 1차전에서 1번 타자 유격수로 선발 출전해 1회초 미치 화이트의 시속 152㎞ 초구 직구를 강타, 비거리 105m 짜리 선제 솔로 홈런을 터뜨렸다.
이후 타선은 3회에도 김영웅의 투런 홈런, 4회에도 2점을 더 보태 5-0으로 리드를 잡았다. 덕분에 가을만 되면 작아지던 선발 최원태가 6이닝 무실점으로 깜짝 호투를 펼쳤고 7회 2점을 내주고도 5-2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총 34차례 준PO에서 1차전 승리팀은 85.3%(29/34)나 PO로 향했다. 이재현의 한 방이 삼성에 행운의 확률을 선사했다.
서울고를 거쳐 2022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으로 삼성 유니폼을 입은 이재현은 빠르게 팀의 주전 유격수 자리를 꿰찼고 작년 삼성의 가을야구를 경험했다. 삼성은 감동의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이재현은 타율 0.103(29타수 3안타)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번엔 WC부터 타율 0.429(7타수 3안타)로 훨훨 날았다. 팀이 날린 안타의 절반을 책임졌고 이날도 1번 타자 중책을 맡아 제대로 날아올랐다.
SSG 1선발 드류 앤더슨이 장염 증세로 1차전 선발이 무산됐지만 화이트 또한 매우 강력한 투수였다. 기선제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재현은 작정하고 방망이를 휘둘렀고 이는 삼성의 가을 분위기를 바꾸는 한 방이 됐다.

박진만 감독도 경기 후 "선두 타자 이재현의 홈런도 WC전 타선 침체로 처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많이 올려줬다"며 "1번 타자로서 WC 때부터 가장 잘해주고 있고 타격 컨디션이 가장 좋다. 수비도 수비지만 공격에서도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다. 작년 한국시리즈를 하면서 많이 성장한 것 같다"고 칭찬했다.
"재현이의 선두 타자 홈런이 막혀 있던 걸 뚫어준 것 같다"며 "분위기도 많이 올려줬고 분위기나 상황적으로 어려움을 갖고 있었는데 선취점을 내니 꼬여 있던 게 풀린 것 같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작정하고 때린 한 방의 역할이 컸다. 이재현은 "타석에 들어가기 전에 상대 투수가 치기 쉽지 않은 구위라고 생각해 (공략하기) 가장 높은 확률인 선두 타자 직구에 포커스 맞춰서 승부를 봤다"고 말했다.
이는 준PO 역대 3번째 1회초 선두타자 홈런이자 포스트시즌을 통틀어도 5번째 기록이었다. 초구 홈런으로 한정하면 역대 최초의 진기록이었다. 이재현은 "전혀 생각도 못했던 기록이다. 선취점이 난 게 중요한 거지 크게 기록에 의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덤덤하게 소감을 밝혔다.
말 그대로 혈을 뚫어주는 한 방이었다. 이후 삼성은 너무도 순탄하게 경기를 풀어갔다. SSG 야수진의 잇따른 호수비가 아니었다면 더 많은 점수를 낼 수도 있었다. 이날 데일리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한 최원태도 "재현이가 선두 타자 홈런으로 1점을 뽑으면서 제가 공격적으로 할 수 있었다"고 공을 돌리기도 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를 겪으며 얻은 게 많았다. "심리적인 부분에서 실수가 나오면 분위기 처지기 때문에 더 집중하려고 했다"는 그는 "긴장은 작년이나 올해나 똑같이 되는데 한 번 해봐서 그런지 미리미리 플레이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여유)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최원태에 대한 미안함도 더 정신을 차리게 만든 비결 중 하나였다. 이재현은 "정규 시즌 막바지 때 원태형 등판 경기에서 실수했던 부분이 많아서 미안함이 있었다"며 "선두 타자 홈런을 쳐서 도움이 됐다고 하니 기쁘다"고 전했다.
144경기 중 거의 대부분인 139경기에 나섰고 체력 부담이 큰 유격수로서도 빼어난 기량을 뽐냈다. 거기에 이어 집중력이 배가 돼야 하는 가을야구에도 나서고 있지만 누구보다 높은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재현은 "올 시즌 하면서 체력적으로 지쳤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며 "(타석에서) 발을 조금 빼놓고 준비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준비했는데 그게 잘 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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