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3년간 KT 위즈 심리상담 코디네이터를 맡았던 안영명(41)이 체계화된 멘탈 케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 KBO 리그에서 멘탈 케어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분야다. 프로 스포츠 선수들의 육성과 기량 발전에 동기 부여와 심리적 안정이 중요해졌다는 걸 모르는 야구인은 없다. 구단마다 심리 상담 관련 전문가를 초빙하거나 고용해 선수들의 정신 건강에 신경 쓴 지도 오래다. 몇몇 구단에서는 전문적인 기계과 전문의를 동원해 선수들의 마음에 다가서고 있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체계적이고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선수 출신' 안영명의 제언이다. 2022년 유니폼을 벗은 안영명은 은퇴한 KT 구단에서 심리 상담 코디네이터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현재 단국대 체육학 석·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최근에는 '프로야구 2군 투수의 경기 불안 요인과 대처전략 분석 연구'라는 KCI(한국학술지인용색인) 논문도 내놓았다.
KBO 소속 퓨처스리그 현역 투수 5명(KT 소속 제외)을 연구참여자로 선정한 이 논문은 그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개인적, 사회적, 환경적 반응으로 나눠 분석했다. 누구나 중요성은 알고 있다고 생각해 넘어갈 수 있는 스포츠 심리 상담 항목에서 다들 놓쳤다고 생각한 것은 무엇일까.
안영명은 "현재 우리나라의 선수 심리 상담은 외부 상담사나 교수님들이 와서 셀프 토크, 심상 트레이닝 등을 강의하는 데 머물러 있다고 본다. 나는 그보다 더 나아가서 현장에서 더 잘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봤다"고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이어 "예를 들어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쓸 수 있는 심리 기술이 있다. 완벽주의 성향의 선수들이 경기 중 집착을 끊을 수 있는 심리 기술이 있고, 경기 들어가기 전 자신에게 가장 맞는 각성 수준이 있다. 나 역시 1군 선수들에게는 매 경기 평정심을 유지하는 법, 2군 선수들에게는 어떤 결과를 두고 달려갈 수 있는 수행 목표나 비전에 대해 일러준다"라고 덧붙였다.

미국과 일본과 비교해 심리 상담에 대한 인식과 환경이 뒤처진 걸 안타까워했다. 안영명은 "우리나라에서 선수 심리 상담 분야가 많이 침체했다고 느낀다. 올해 고시엔 우승팀 오키나와쇼가쿠 고교 기사를 보고 직접 일본으로 찾아간 적이 있다"라고 운을 띄웠다.
그러면서 "일본은 이미 고등학교 야구부부터 심리상담 코치가 있었다. 외야에서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라. 그 코치님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미국에서 피지컬적인 부분을 받아들였던 15년 전과 또 다르다고 했다. 지금 일본은 다시 멘탈을 첫 번째, 피지컬을 그다음으로 두고 있었다"고 현실을 짚었다.
또 "미국도 심리 상담에 대한 분위기가 개방적이다. 어릴 적부터 너무나 익숙한 것이어서 프로에 와서도 상담받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선수가 심리 상담을 받으면 그 자체만으로도 '멘탈이 약한 선수'라는 시선을 접하게 된다. 그 부분이 많이 아쉽고 우리나라도 변해야 할 부분"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우리나라에만 유독 선수들의 심리 상담 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이유로는 일부 구단에서 비밀이 보장되지 않았던 것이 주로 꼽힌다. 구단은 그 선수가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알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선수 입장에서는 자신의 고민이 알려지는 것이 부담이고, 상담 전문가는 선수와 라포(Rapport·상담자와 그 대상 사이 형성되는 친밀감이나 신뢰감)를 쌓기 어려워 형식적인 선에서 그칠 확률이 높다. 이번 논문에서도 지도자와 관계적 불안, 심리상담 과정 노출 등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은 사례가 소개돼 안타까움을 더했다.

선수와 심리 전문가 사이 마음의 벽을 허물기 위해선 비밀 보장이 필수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안영명은 "심리 상담에 있어 첫 번째 윤리가 비밀 보장이다. 우리나라에서 스포츠 심리 상담이 15년 전부터 이미 뿌리는 내렸지만, 그 부분이 지켜지지 않아 지금은 제로 베이스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물론 심리학자분들도 구단에 보고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KT는 정말 감사한 팀이다. 나도현 단장님과 이강철 감독님이 그 부분에서 굉장히 배려를 많이 해주신다. 전적으로 보고서를 올리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었고, 덕분에 나도 선수들과 조금 더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 선수들이 야구 외적인 고민을 꺼내는 일이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심리 상담 코디네이터라는 코치도 아닌 낯선 직책으로 어느덧 4년 차. 구단의 배려로 안영명은 MZ 세대로 불리는 유망주들을 비롯한 KT 선수들의 대나무숲이 되고 있다. 안영명은 "다행히 KT 선수들과는 좋은 라포 관계가 형성된 것 같다. 선수들이 비시즌 때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가거나 답답한 속 이야기도 많이 한다"라고 고마움을 나타냈다. 이어 "아직 심리 상담이 낯선 선수들이 있을 수 있다. 그들에게 그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상처가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 이름을 걸고 선수들과 비밀은 보장한다. 또 열심히 최선을 다할 테니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다가와 줬으면 좋겠다"고 힘줘 말했다.
KT뿐 아니라 다른 팀 선수들에게도 심리 상담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길 바랐다. 그렇기 위해서는 '심리 상담받는다=멘탈이 약하다'는 식의 일부 야구 관계자들의 부정적인 인식 개선도 필수다. 안영명은 "심리 상담을 감기 치료받는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들어갔으면 좋겠다. 나 같은 경우 '내가 하는 얘기로 드라마틱하게 변화하는 건 없으니까 그냥 감정 쓰레기통으로 생각하고 얘기해'라고도 말한다. 스포츠인들이 그런 식으로 심리 상담을 편하게 언제든 받을 수 있는 무언가로 여겼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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