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에 한 번 있기도 어려운 비극적인 일들을 연이어 겪었던 레전드가 세상을 떠났다. 웨일스 축구의 전설이자 리즈 유나이티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테리 요라스가 별세했다.
영국 매체 'BBC'는 9일(한국시간) 요라스의 부고를 전하며 그가 그라운드 안팎에서 겪은 영광과 비극을 조명했다. 매체에 따르면 요라스는 웨일스 선수 최초로 유러피언컵(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를 밟은 인물이자, 삶을 송두리째 흔든 두 번의 비극을 견뎌냈다.
카디프 태생의 요라스는 1970년대 초반 돈 레비 감독이 이끌던 리즈의 핵심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1965년 유소년 선수로 리즈에 입단한 요라스는 빌리 브렘너, 조니 자일스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과 경쟁하며 성장했다. 1973~1974시즌 팀의 1부 리그 우승에 기여했고, 1975년에는 바이에른 뮌헨과 유러피언컵 결승전에 출전하며 웨일스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후 코번트리 시티와 토트넘 홋스퍼, 밴쿠버 화이트캡스 등을 거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요라스는 웨일스 국가대표팀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A매치 59경기 중 42경기를 주장 완장을 차고 뛰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변신해 웨일스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그가 이끌던 웨일스는 1994년 미국 월드컵 본선 진출을 눈앞에 뒀으나, 마지막 관문이었던 루마니아전에서 1-2로 패하며 좌절했다. 당시 폴 보딘이 페널티킥을 실축하며 땅을 쳤지만, 요라스는 "우리가 진 것은 폴의 잘못이 아니다. 사람들은 첫 실점 당시 골키퍼 네빌 사우스올의 실수를 잊곤 한다"며 제자를 감싸기도 했다.
화려했던 경력 뒤에는 감당하기 힘든 비극도 있었다. 요라스는 1985년 브래드포드 시티의 플레잉 코치로 재직하던 중 발생한 브래드포드 화재 참사의 생존자다.
'BBC'에 따르면 요라스는 당시 화재로 56명이 목숨을 잃는 참혹한 현장에서 가족들을 대피시키고 창문을 깨고 탈출해야 했다. 요라스는 2017년 인터뷰에서 "밖으로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본 것은 팔에 화상을 입은 채 가슴에 손을 얹고 쓰러져 있는 노인이었다"며 "다음 날 다시 찾은 현장의 참혹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더 큰 슬픔은 1992년에 찾아왔다. 리즈 유스 팀에서 뛰던 아들 다니엘이 15세의 어린 나이에 유전성 심장 질환인 비후성 심근병증으로 돌연사했다. 요라스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극복하지 못했다. 술을 더 많이 마시기 시작했다. 매일 밤 아들의 무덤을 찾아가고, 아들의 방에 들어가 옷 냄새를 맡곤 했다"며 가슴 아픈 사연을 털어놓기도 했다.
75세에 세상을 떠난 요라스는 스완지 시티, 브래드포드, 카디프 시티, 셰필드 웬즈데이 등 여러 클럽을 지휘하며 지도자로서도 족적을 남겼고, 2017년에는 웨일스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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