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도 인생에서 한 번뿐인 날인데 많이 즐겼으면 좋겠어요."
아버지는 아들의 프로 입단이 너무 기쁜 나머지 드래프트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까지 췄다. 정작 그렇게 드래프트장을 뒤집어놓고 단상에서 내려오는 길엔 옆에 있는 아들이 창피했을까 뒤늦게 걱정이 들었다. 어머니 역시 남편이 또 무슨 일을 벌일까 불안했다. 정작 이후 만난 아들은 담담했다.
롯데 자이언츠가 지난 21일 서울 롯데호텔 월드 크리스탈볼룸에서 열린 2027 KBO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4순위로 서울디자인고 좌완 박근서(18)를 지명했다.
박근서는 올해 가장 가파르게 주가를 끌어올린 선수 중 하나다. 최고 시속 149㎞의 빠른 공을 앞세워 3학년 시즌 들어 1라운드 상위권 후보로 급부상했고,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구단들의 관심까지 받았다. 그러나 KBO 리그에서 먼저 자신을 증명하는 길을 택했고 결국 전체 4순위라는 높은 순번으로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이날 박근서 못지않게 화제를 모은 사람이 있었다. 아버지였다. 아들의 이름이 불린 뒤 함께 무대에 오른 박근서의 아버지는 갑자기 "노래 한 곡만 하고 내려가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리고 평소 좋아하던 '라밤바'를 부르기 시작했다. 단순한 노래도 아니었다. "나는 선원이 아니라 선장"이라는 의미의 가사를 항구도시 부산, 그리고 롯데와 연결해 아들이 훗날 팀의 '선장'이 되길 바라는 마음까지 담았다.

춤까지 곁들이자 행사장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됐다. 박근서 아버지는 드래프트 후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박)근서가 그제부터 '뭐 할 거야? 나가서 헛소리하면 나 그냥 바로 내려온다? 대학 간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나도 뭘 할까 하다가 신나게 노래 한번 부르고 내려오자고 생각했다. 라밤바는 옛날부터 노래방에 가면 부르던 노래인데 선장이 필요하다는 가사가 있어서 롯데 지명을 예상하고 준비했다"며 "나름대로 연습하고 가다듬어서 나갔는데 노래는 개판이었다"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무대에서는 즐거웠지만 내려오면서 순간 걱정도 됐다. 박근서 아버지는 "앉아 계신 분들이 다들 좋아해 주셔서 '내가 잘했구나' 하고 내려왔는데 옆에서 근서 얼굴이 빨개져 있더라. 혹시 삐지면 어쩌나 덜컥 걱정됐다"고 털어놨다.
어머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계 화면에는 남편의 노래가 시작되자 눈을 질끈 감는 모습이 잡혀 또 다른 화제가 됐다. 박근서 어머니는 "멘트를 범상치 않게 할 거라는 예상은 했다. 제발 조금은 평범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노래는 정말 상상도 못 했다"며 "내 예상을 깨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였다"고 웃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걱정은 기우였다. 박근서는 "원래 아빠가 그런 성격이라 뭔가를 하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그게 춤일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며 "원래 지명 소감을 더 길게 준비했는데 아빠가 하는 걸 보고 머리가 하얘졌다.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라서 나도 엄마도 많이 놀랐다. 그래서 그냥 빨리하고 내려왔다"고 말했다.
얼굴이 빨개질 만큼 당황한 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부끄러운 건 아니었다. 박근서는 "어떻게 보면 정말 이날만을 위해 아빠와 엄마가 저를 계속 서포트해주신 것"이라며 "아빠, 엄마의 도움이 없었다면 저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고마운 마음이 정말 크다"고 말했다. 이어 "아빠도 인생에서 한 번뿐인 날이니까 많이 즐기셨으면 좋겠다"고 오히려 아버지의 기를 살려줬다.
박근서의 야구 인생 시작부터 부모님의 선택이 있었다. 어릴 때 축구를 좋아했던 아들에게 아버지는 하고 싶은 운동을 마음껏 경험하게 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미국에서 찾아왔다. 고모 집에 놀러 갔다가 가족과 함께 메이저리그 경기를 봤고, 그날 최지만(35·울산 웨일즈)이 뛰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 박근서는 야구에 빠졌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좋아하던 축구소년이 야구선수로 방향을 틀게 된 순간이었다. 박근서는 앞서 스타뉴스와 인터뷰에서 "내가 간 경기에서 최지만 선배님이 적시타를 치면서 팀을 승리로 이끌었던 기억이 있다. 그 경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떠올린 바 있다.

그렇게 시작한 야구가 10년 가까운 시간을 거쳐 프로 1라운드 전체 4순위 지명으로 이어졌다. 새로운 팀을 향한 설렘도 크다. 박근서는 "롯데가 역사가 깊은 팀이라는 걸 알고 있다. 뽑힌 팀이 롯데여서 더 기분이 좋은 것도 있다. 내가 가서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하겠다"며 "팬들이 많이 기대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롯데에서 가장 먼저 뽑힌 만큼 기대에 부응해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산은 중학교 때 대회하면서 한 번 가보고 많이 가보진 못했다.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될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곳이 부산이라 기대된다. 팬들이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 행동 하나하나도 더 조심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좌완인 김진욱(24·롯데)을 향한 기대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전부터 정말 좋아하고 관심 있게 봤던 선배님이다. 이제 같은 팀이 됐으니 옆에서 많이 물어보고 배우면서 김진욱 선배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아들이 혹시 창피해할까 걱정했던 아버지. 제발 평범하게 지나가길 바랐던 어머니. 하지만 정작 박근서에게 그날의 주인공은 자신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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