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 홍국영의 방자함, 차라리 거짓이었으면..

김관명 기자 / 입력 : 2008.03.26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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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사람이 어떻게 이리 극심히 변할 수 있을까. 극중 대수(이종수)의 살떨리는 심정이 옳다. "하지만 영감, 예전과 달라진 것은 사실이옵니다. 저희들 대하는 것도 그렇고.." 시청자들도 씁쓸해 하고 있다. "그래도 정말 좋았는데..어제는 정말 무서웠음..예전 초심으로 돌아가서 정조 임금님을 모셨다면 정말 좋을텐데.."

MBC 월화사극 '이산'의 홍국영(한상진)이 너무 변했다. 영원히 정조(이서진) 옆에서 충심을 다할 것으로만 알았고, 항상 올바르고 청렴한 판단만 할 줄 알았던 그가 점점 변질돼 가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야 정조 집권후 왕과 신하로서, 후궁의 오라버니로서 큰 갈등을 빚은 것은 맞지만, 드라마로 보니, 빈한한 시절의 그 좋았던 모습과 겹쳐져 충격은 더 큰 것이다.


특히 지난 25일 방송분에서 도승지 홍국영의 변심과 방자함은 거의 제어불능, 자포자기 수준에 도달했다. 노론 벽파 세력을 잡기 위해 대비마마(김여진)의 연금을 풀어달라고 정조에게 주청한 것은 이해할 만 했다. 정조를 향한 그의 충심이 그래도 아직은 느껴지니까, 그리고 그의 이런식의 도발적인 언행이 한두번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자네 말이 지나치군..난 자네 상관이네. 스스럼없이 지낸다고 해서 막말을 놓아서는 안된다는 말일세"라며 옛 동지들을 차갑게 대하는 태도는 이미 예전의 살갑던 홍국영이 아니다. 정조의 최측근으로 권세의 한복판에 있는 자가 부리는 특유의 못난 권위주의, 그 자체다. 이미 그의 눈엔 좌의정 장태우(이재용)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조정 중신에게 "몸을 사리시라"며 대놓고 협박하기 일쑤다.

이런 그의 변심 내지 변절은 본인 스스로도 인정했다. 홍국영이 안타까워하는 대수에게 말했다. "나는 달라졌다. 그토록 내가 원하는 권세를 잡았는데 어찌 안 변하겠느냐. 왜 내가 예전의 홍국영이어야 하느냐 말이다." 권세를 잡은 한 인간의 너무나 인간적인 고민처럼 보이지만, 이건 그저 고약한 자기합리화, 자기변명일 뿐이다.


더욱이 이 사람 홍국영, 친인척 관리에도 드디어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정조의 후궁으로 들어앉은 여동생 원빈의 거짓 임신을, 그녀의 눈물 절절 호소로 인해 그냥 눈감아주려 하는 것이다. 권력의 맛은 알았고, 친인척 관리의 허점은 생기기 시작했으니, 그의 앞날은 이제 뻔하다.

이런 홍국영의 모습에 시청자들도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산' 게시판에는 홍국영을 비판하고 섭섭해 하는 글들이 꽤 많이 올라오고 있다. "홍국영 결국 너도 똑같은 놈이구나.." "정조의 오른팔이자 충신이었던 홍국영이 악인이 되어가니 시청자로서 서운하고 실망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그런 사람이었는데 착하게 바꿀 수는 없잖은가" "홍국영, 사람이 저렇게 달라지나..중전 불쌍하네.."

과연 실록은 홍국영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혹시나 하는 기대와는 달리, 조선왕조실록은 이런 홍국영을 '방자', 이 한 단어로 요약하고 있다. '홍국영의 방자함이 날로 극심하여 온 조정이 감히 그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였다'(정조 3년 5월7일)

정조 4년 3월19일 정언 심낙수가 임금에게 올린 상소문은 변심한 홍국영의 요약정리 완결판이다.

"천고에 권간(權奸)은 매우 많았으나 홍국영처럼 교묘하고 참혹한 자는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의리를 지켜서 그 공로가 없지 않았으나 경천욕일(국가에 큰 공을 세움)의 공훈을 자처하여 일세를 호령하였습니다. 궁액에 인척을 맺어 더욱 위세를 부리게 되어서는 안으로는 폐부의 친척임을 핑계삼고 밖으로는 주석의 이름을 빙자하여 사람마다 그 지휘를 따르고 일마다 그 기식을 기다리게 하였습니다...이것이 그가 전후에 임금을 위협하고 세상을 속인 술법이며, 한마디 말도 감히 언급하는 자가 없는 이유입니다."

역사적으로는 홍국영이 도승지가 된 후부터 온갖 횡포를 일삼은 것으로 돼 있다. 후궁으로 들어간 누이동생 원빈이 1년만에 병사한 뒤에는, 정조가 새 빈을 맞아들이지 못하도록 극력 반대하기까지 했다. 불쌍타, 홍국영이여, 애닯다, 정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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