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는 개그일뿐? 개그도 '막장시대' 우려

최문정 기자 / 입력 : 2009.03.18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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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개그콘서트'의 '할매가 뿔났다' 코너 <사진출처=KBS>


"재수 없어", "꺼져" 정도는 가뿐하다. 퍽 소리가 날 정도로 후려치고 입맞춤을 하는 것도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지상파 방송3사 개그프로그램의 현실이다.

'막장 드라마'라는 말이 통용되고 있다. 너무 과격한 요소들이 많아 욕하면서 본다는 건데 요즘엔 개그프로그램 앞에도 '막장'이라는 두 글자가 붙기 시작했다. 개그 프로그램의 현재와 이를 보는 시청자의 우려를 정리해본다.


◆ 막장·패륜 혹은 대박 웃음‥경계가 모호하다

"지금 공짜로 받았다가 나중에 어떤 더러운 꼴 당하려구요", "할머니 뭐하시는 거예요 정신이 썩은 사람한테." 그냥도 수위가 높은 말이지만 말하는 이가 손자고 상대가 할아버지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등장하자마자 주먹질, 발길질부터 하는 할머니도 문제지만 막나가는 손자의 행동 앞에서는 차라리 잠깐 맞는 게 오히려 나을지도 모르겠다 싶기도 하다.

KBS 2TV '개그콘서트'의 '할매가 뿔났다' 코너가 그 폭력성과 패륜적인 내용으로 지적받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는 절대 함께 볼 수 없는 코너", "웃기려는 의도는 좋지만 결국 아이들이 TV를 보고 배운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이는 '개그야'도 마찬가지다. 14일 방송된 '장인장모 전'에서는 맹장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한 여자에게 남편과 동생이 "하고 많은 수술 중에 맹장 수술이야"라며 병원으로 옮긴 사위에게 "조금만 늦지 그랬어"라고 질책하며 죽을 위험은 없음에 아쉬워한다. '시사매거진 박준형의 눈' 코너에서는 폭탄주 제조법을 상세히 알려주기도 한다.

이런 프로그램은 본 당시에는 헛웃음이든 폭소든 분명 웃음 짓게 한다. 과격한 행동과 풍자, 비하는 개그에서 통용되는 전통적인 웃음 소재다.

그러나 웃음 소재로 좋을지는 몰라도 개그프로를 보고 따라하곤 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막막해진다. 특히 패륜적인 행동을 당연한 듯 늘 추켜세워지는 손자의 모습 등 "개념이 안드로메다로 떠난 것 같다"는 상황에는 "개그프로그램인데도 애들 보라고 두기가 겁난다"는 걱정 어린 목소리가 나온다.

"개그는 개그일 뿐 진지하게 생각하지 말자"는 이도 분명 있다. "그 정도는 충분히 판단하고 받아들일 수 있지 않냐"고도 한다. 그러나 모두에게 환하게 밝혀진 TV 브라운관 앞에 앉아 즐겁게 웃음 짓고자 하는 개그프로그램 시청자는 그 입꼬리를 끌어내리는 '막장', '패륜'적 요소에 웃을 지 말지 고민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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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쵸코보이' 코너 <사진출처=SBS>


◆ 성적 요소 희화화.."가족끼리 보기엔 부끄러워"

당구 자세를 가르쳐 준다고 하더니 결말을 가슴을 만지는 성적 표현이다. 산타와 루돌프라고 설정하고 속력을 내보라고 치더니 결국은 엉덩이를 만진다. 망원경으로 남의 집을 넘보며 신혼부부라며 "댓츠 베리 핫~"(That's very hot)을 외친다.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쵸코보이' 코너다.

여성의 외모를 희화화하거나 가슴 등을 직접적인 웃음소재로 활용하는 것은 예사다. 성적인 표현들도 서슴지 않는다. 여자개그맨들은 주가 돼 나서기보다 여성성을 웃음의 소재로 활용하는 부수적인 인물로 등장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에 시청자는"가족들과 함께 보기엔 개그 소재가 민망하다", "개그도 막장이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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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개그야'의 '그렇지요~'코너 <사진출처=MBC>


◆ 막말·폭력 남발 개그 프로그램, 시청자 "웃어야 할지.."

마치 만화 속 짱구가 18금 옷을 입은 듯 막말을 줄줄이 쏟아낸다. "이런 거지같은 자식아","네 이빨을 털어버리기 전에 당장 그만둬", 여기에 "지옥에나 가버려" 한 마디로 쐐기를 박는다. MBC '개그야'의 '그렇지요~' 코너다.

이는 '개그야' 만의 얘기는 아니다. 개그코너 중 동료 개그맨을 치고 밟는 것 정도는 되레 중요한 웃음코드로 활용된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웃음 짓는 마조히즘적인 모습들이 프로그램 전체를 물들이고 있다.

단편적인 예를 또 하나 들어보자. 15일 방송된 '개그콘서트'의 '도움상회' 코너에서는 "밤새서 한 번 때려보자"며 집단 구타 상황을 실감나게 재연했다. 신입생 환영회 상황을 재현하며 사발식을 치르고 "이것도 전통"이라며 때리기까지 했다.

물론 웃음을 양산하기 위한 과정의 하나라고 너그러이 바라볼 수도 있다. '새삼스럽게'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방송3사의 개그프로그램은 이리저리 이동하고 있는 프로그램 방영시간대와는 무관하게 막말과 폭력성의 수위가 점차 강해져만 가고 있다. 이에 "마냥 웃자니 왠지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웃음을 주려는 겁니까, 상처와 허탈감을 주려는 겁니까"라는 시청자의 목소리도 커져 가고 있음은 분명 인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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