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사자상·'말춤'의 나라, 현실은 비루하다

[김관명칼럼]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2.09.10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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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과 싸이(왼쪽부터)


요즘 외국에서 대한민국을 보면 참 신기할 것 같다. 싸이라는 가수가 부른 '강남스타일'이 유튜브에서만 1억2000만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그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말춤'에 미국프로풋볼(NFL) 선수들은 물론 LMFAO, 존 메이어, 밀라 요보비치 같은 해외 톱스타들까지 열광하니까. 알고 보니 그 나라는 1~2년 사이 'K팝'으로 꽤나 유명세를 타고 있는 나라였더랬다.

더욱이 이번엔 그 나라에서 황금사자상까지 수상했다.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라는 영화가 8일(현지시간) 폐막한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다른 영화제도 아닌,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다. 알고 보니 그 나라는 일찌감치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로 칸을 술렁거리게 만들었던 나라였더란다.


파란 눈의 외국인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올림픽사상 처음으로 축구 4강에 진출한 게 엊그제처럼 느껴지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싸이와 김기덕 감독의 낭보를 연이어 접하며 "진짜 그 정도야?" 반신반의 중이다. 하긴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이라는 자국영화가 전국관객 1200만명을 동원한 것을 보면, 자국 작품의 해외영화제 수상이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이같은 화려한 외피를 한 꺼풀만 벗겨보면 싸이도 그렇고 김기덕 감독도 그렇고 진정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한' 격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선 사업자가 만들어 인터넷에 띄우려는 모든 뮤직비디오와 티저 영상은 사전등급을 받아야 한다. 전체·12세·15세 관람가, 청소년관람불가. 이런 사전등급을 뮤비 초반에 '고지'를 해야 한다. 이를 주관하는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사전검열이 아니라 연령별 청취 가이드"라고 강조하지만, 창작자 입장에선 '심의' 수준으로 다가오는 큰 '압박'일 수밖에 없다.


싸이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의 지드래곤의 경우다. 최근 '그XX'라는 노래를 내놓으면서 음원에는 처음부터 '청소년청취불가' 마크를 붙였고, 뮤직비디오는 욕설이 들어간 부분을 편집해 사전등급을 받기로 했다. 욕설이 들어간 노래를 찬양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아티스트와 해당 소속사가 이런 부가적인 고민에 쏟아 부어야 할 시간과 노력, 재능이 진정 아깝다.

하긴 우리나라는 가요심의에 관한 한 가히 독보적인 나라다. 유신독재 시절 '거짓말이야' '미인' '댄서의 순정' '그건 너' '한잔의 추억' 등 수두룩한 노래들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방송 및 판매, 공연이 금지됐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결국 창작자 스스로가 알아서 '기는' 부작용을 낳았다. 그렇게 해서 '아침이슬' '고래사냥' '왜 불러' 등이 또 사라졌다. '자율심의'는 창작자를 순식간에 죽여 버리는 독버섯이다.

김기덕 감독 또한 베니스에서 낭보를 전하기 바로 직전에 '강심장' 같은 TV예능 프로그램에 나가 '영화홍보'를 해야 했다. 이는 마케팅 차원이니까 그런대로 OK. 하지만 황금사자상뿐만 아니라 베니스, 베를린, 칸에서 이미 굵직한 상을 받은 세계적인 감독이 국내에서 자신의 영화가 개봉할 수 있는지부터 걱정해야 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이는 관객의 취향 문제가 아니라 배급 시스템의 문제다.

이런 국내 영화배급의 무자비성은 개봉을 앞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시사회 직후부터 '800만 영화' 소리를 듣고 있는 이 웰메이드 영화가 개봉일을 전격적으로 일주일 앞당겼다. '피에타'를 비롯해 앞서 개봉날짜를 조정했던 다른 '작은 영화'들은 이제 생사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초비상이 걸렸다. "시장과 관객이 원하는 대로 따른 것일 뿐"이라는 게 해당 배급사의 논리다.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이렇게 해서 13일 개봉하면 '피에타'를 비롯한 작은 영화들의 상영관수는 급감할 게 뻔하다. 다 아시지 않는가. 보고 싶어도 상영관이 없어서 못 봤던 영화가 얼마나 많았었는지를. 그리고 얼마 후면 이처럼 쿨한 자본주의 논리를 내세웠던 메이저 배급사는 "한국의 작은 영화 지원을 위해 물심을 아끼지 않겠다"며 또 어마어마한 이벤트를 벌일 게 뻔하다.

사전등급에 개봉난망 같은 비루한 현실 왕창 까먹고 낭보에만 취하는 일, 이제 그만 하자는 얘기다. 먹고 살기 위해 안간힘 써서 바늘구멍 통과한 싸이와 김기덕 감독 같은 '창작자'들을 향해 "대한민국 영화 역시 대단해요" "K팝의 더 큰 발전을 위해 정부 차원의 전폭 지원이 있을 것" 등등의 호들갑 그만 떨자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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