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4특집]'암살' 달라진 최동훈, 새로운 한국형 블록버스터①

[★리포트][리뷰] 암살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5.07.14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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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극장가에는 한국영화 빅4가 관객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암살' '베테랑' '협녀' '뷰티 인사이드', 색이 분명한 4편의 영화가 어떤 모습으로 관객과 만날지, 스타뉴스가 먼저 짚어봤다. 첫 주자는 '암살'이다.

최동훈 감독은 묵직한 한방을 갖고 있는 인파이터라기 보단 풋워크가 날렵한 아웃파이터다. 화려한 발놀림으로 현혹시키며 급소에 날카로운 잽을 꽂아 관객을 사로잡는다. '범죄의 재구성' '타짜' '전우치' '도둑들'까지 그의 영화는 경쾌했다.


그랬던 최동훈 감독이 1930년대 친일파 암살 작전이란 이야기란 낯선 링에 올랐다. 전혀 새로운 링에서 최동훈 감독은 어떻게 게임을 운영했을까, 분명한 건 그는 가지 않았던 길을 갔다는 점이다.

13일 '암살' 기자시사회가 열렸다. 멀다는 이유로 기자시사회 장소로 꺼리는 코엑스 메가박스로 수많은 영화 담당 기자들과 배급, 투자사 관계자들이 몰린 건 최동훈과 '암살'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그 만큼 '암살'은 올 여름 한국영화 최고 기대작으로 꼽혔다.

'암살'은 180억원에 달하는 순제작비에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주인공 삼인방과 조진웅 이경영 오달수 김의성 최덕문 등 화려한 조연들, 조승우 김해숙 등 주인공 못지않은 카메오 등 초호화 라인업으로 일찌감치 관심을 모았다. '도둑들'로 1300만명을 동원한 최동훈 감독의 신작에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친일파 암살이란 소재라니 천만은 떼 논 당상이란 말도 무성했다. 뒤집어보면 최동훈 감독은 그런 부담감을 안고 '암살'을 만들었단 소리다.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일제가 중국을 노골적으로 노리던 1930년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장 김구와 의열단 단장 김원봉은 조선 양민을 학살한 간도 참변의 주범이자 조선 주둔군 사령관인 카와구치 마모루와 대표 친일파 강일국을 암살하기 위해 전문가들을 모은다.

일찍이 조선총독 데라우치를 암살하려다 실패한 뒤 종로경찰서에 수감됐다가 탈출한 전설적인 독립군 염석진 대장이, 만주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과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 폭탄 전문가 황덕삼을 모은다. 상하이에 모인 세 사람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빼앗긴 조국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대의를 갖고 있지는 않는 법. 누구보다 독립에 앞장 설 것이라 믿어졌던 염석진 대장은 일제에 영혼을 판 밀정이었다. 그는 먼저 떠난 세 사람을 오히려 죽이라며 300달러면 사람을 죽여주는 상하이 최고 청부살인업자 하와이피스톨에게 의뢰를 한다. 염석진, 그도 정체가 들키자 자신을 비싸게 사줄 경성으로 떠난다. 대의를 위해 죽이려는 자들, 돈을 위해 죽이려는 자들, 저 혼자 살기 위해 남을 죽이려는 자들, 결국 살아가기 위해 죽이려는 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1930년대는 한국영화의 개미지옥이었다. 새로운 세상이 열렸던 시대, 하지만 암울했던 시대, 그 시대를 담으려 여러 감독과 제작자들이 덤벼들었으나 모조리 빨려 들어가 헤어 나오지 못했다. 어떤 새로운 시도를 하려해도 역사의 무게를 이겨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에 이름을 깊이 새긴 실존인물이라면 차라리 손쉬웠을 수 있다. 감동이 레일을 타고 정해진 역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러 창작자들은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그리고 실패했다.

최동훈 감독은 그런 위험한 길을 택했다. '암살'은 액자식 영화다. 누군가의 회고와 그 회고 끝에 어떤 결말로 막을 내린다.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옛 이야기, 잊혀진 사람들의 이야기, 결말이 나진 않았지만 그래서 결말을 내야 하는 이야기.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옛 이야기이니 서사구조가 확실하다. 크게 세 단락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던 지금까지 최동훈 감독 영화와 다르다. '암살'은 다섯 단락으로 기승전결, 그리고 후일담까지 이어진다. 자연히 길다. 긴 이야기 흐름은 30년대란 시대를 다뤘기에 필연적이다. 최동훈 감독은 그동안 캐릭터 속에 이야기를 담았다면, '암살'에선 이야기 속에 캐릭터를 담았다. 새로운 길이다.

그동안 최영환 촬영감독과 호흡을 맞춰왔던 최동훈 감독은 '암살'에선 김우형 촬영감독과 첫 작업을 했다. 감정을 카메라로 그려내는 김우형 촬영감독이 합류했다는 건 '암살'이 기존 최동훈 감독의 빠른 호흡과는 다르다는 뜻이기도 하다. 역시 새로운 길이다.

빠른 편집으로 인물에 집중시키는 대신 이야기 속에서 캐릭터들의 감정을, 그리고 선택을 깊이 따라가도록 만들었다. '암살'은 그래서 최동훈 감독의 새로운 시도이자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새로운 시도이다.

그렇다고 최동훈 감독이 아웃파이터를 포기한 건 아니다. 그는 3라운드에서 승부를 봤던 과거와 달리 이번엔 5라운드까지 경기를 끌고 가면서 1,2라운드는 빠르게 3,4라운드는 묵직하게 완급을 조절하며 운영한다. 이 운영은 길지만 탁월하다.

최종 라운드에선 역사가 하지 못했던 심판을 영화 안에서 감독이 결론 내린다. 그는 이 5라운드를 위해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민간인은 해하지 않는다, 일본인이 다 나쁜 건 아니다, 라는 정치적인 올바름까지 쌓아가며 운영해갔다.

경쾌함이나 통쾌함보다 무거운 역사를 느끼는 건, 그런 올바름에도 불구하고, 친일파가 해방이 된 뒤에도 득세하고, 이름 없는 독립군들은 끝내 이름을 되찾지 못한, 바로 그 역사를 바로 한국관객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먹먹한 마지막 장면은 최동훈 감독의 의지이자, 이 영화가 쌓아올린 다른 점이다.

안옥윤 역할을 한 전지현은 '암살'을 필모그라피 가장 위에 올려둘 것 같다. 앞선 작품의 조연을 다음 작품의 주연으로 끌어올리는 최동훈 감독은 '도둑들'의 전지현을 '암살'에선 한국영화에 두 번 없을 위치로 만들었다. 여자가 독립운동을, 그것도 저격을, 그것도 대장에, 게다가 역사의 아픔까지 품게 만든 점. '암살'의 이 선택이야말로 신의 한수다. 찰랑거리던 긴 머리까지 싹둑 자른 전지현은 신의 한수에 신의 한수다.

살기 위해 꿈도 버리고 조국도 버린 염석진 역할을 맡은 이정재. 그의 연기는 데뷔 이후 최고다. '암살'에서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변화의 낙폭이 가장 큰 건 이정재다. 노년의 몸을 보여주고자 15㎏를 감량했다는 그의 의지가 느껴진다. 하와이피스톨 역할의 하정우는 존재감 있는 배우란 무엇인지를 이번에도 여실히 보여준다. 그가 등장하면 장면이 흥이 난다. 하정우는 그 장면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그 이상을 보여준다. 짝패로 나온 오달수는 환상궁합이다.

1930년대를 재현한 미술, 댄스 열풍까지 촘촘히 담아낸 장면설계는, '암살'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2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추신. '암살'은 그 시대를 다뤘기에 필연적이지만 그렇다고 울리지 않는다. 역사의 무게를 이용하려 하지 않고 같이 달렸다.

추신2. 하정우 먹방은 없다. 커피 한잔 마신다. '베를린'에서 하정우와 전지현의 로맨스에 가슴이 뛰었던 관객이라면 기대할 만한 장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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