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 진정한 의미의 한국형 좀비 재난 블록버스터 ①

[리뷰] 부산행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6.07.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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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공포가 가장 잘 팔린다. 취업이 안 될 것이란 공포, 집값이 떨어 질 것이란 공포, 좌파가 집권할 것이란 공포, 우파가 집권할 것이란 공포, 미사일이 떨어질 것이란 공포, 여자가 남자의 권리를 뺏으리란 공포, 가만히 있으면 죽으리란 공포, 노조가 회사를 망칠 것이라 공포, 재벌이 착취하고 있다는 공포...


언제나 공포가 가장 잘 팔린다. 좀비 영화는 이런 공포를 자양분으로 삼는다. 죽지 않는 시체, 아니 살아 움직이는 시체, 이 시체들은 동시대의 공포를 먹고 자랐다.

20일 개봉하는 '부산행'(감독 연상호)은 지금 한국의 공포로 탄생했다. 좁은 기차 안에 갖가지 한국의 공포를 우겨 넣었다. 정말 잘 우겨 넣었다. '부산행'은 '돼지의 왕' '사이비' 등을 연출한 애니메이션 감독 연상호의 첫 실사영화. 제69회 칸국제영화제에 초청해 현지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그 때문인지, 12일 기자시사회에는 수많은 기자와 영화 관계자들이 몰렸다. 마치 2006년 칸영화제에서 먼저 공개했다가 여름 시장에 선을 보였던 '괴물' 기자시사회를 연상시켰다. 어디 얼마나 대단한지, 한 번 보자는 분위기도 제법 많았다. 시사회가 끝난 뒤, 삼삼오오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흩어졌다.


'부산행'은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부산으로 떠나는 서울발 KTX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영화다. 익숙한 공포로 시작한다. 구제역 같은 방역을 하는 데서 출발한다. 살아 있는 돼지를 그대로 파묻어 왔던, 너무나 익숙해져 무뎌진 공포. 지극히 한국적인 공포. 그런데 이번엔 좀비 바이러스다. 사람을 겨냥한다.

사람들을 개미로 분류하는 잘 나가는 펀드 매니저 석우(공유). 부산에 있는 아내와는 이혼 위기다. 어린 딸은, 생일날, 그저 엄마를 만나고 싶어한다. 남들에겐 무심한 석우지만 딸의 소원을 들어주고자 한다. 둘은 이른 새벽, 부산행 KTX를 탄다. 새벽부터 뭔가 불길하다. 곳곳에 소방차가 달린다.

그런데 출발하는 KTX에 어딘지 아파 보이는 여고생이 탄다. 그 여고생은 이미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다. 물고 물어 점점 열차 안은 좀비들이 넘쳐난다. 석우는 급히 딸을 피신시키려 하면서 눈 앞에 임산부와 그 남편을 버리려 한다. 몰려드는 좀비 떼가 안전한 객차 안으로 들어오기 전 문을 닫는다. 그 부부는 간신히 객차 안으로 들어오지만 분위기는 냉랭하다. 자신이 살아남으려 남을 버린 탓이다. 당연하지만 옳은 일은 아니다.

이미 세상은 난리다. 열차는 일단 대전 역에서 멈춘다. 석우는 개미 중의 한 명인 군인에게 문의해 다른 승객들과 다르게 빠져 나가려 한다. 하지만 이미 그곳도 지옥이다. 석우는 자기가 버리려 했던 임산부 남편에게 도움을 받고, 사람 취급조차 안 했던 노숙자에게 도움을 받아, 간신히 열차로 되돌아간다. 그렇지만 딸이 좀비가 득실거리는 객차 안에, 임산부, 할머니, 노숙자 등과 남겨졌다.

석우와 임산부 남편, 야구하는 고교생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아, 자기들을 위해, 좀비가 득실거리는 객차로 돌진한다. 이미 열차는 좀비들과, 자기들만 안전하게 살겠다는 사람들도 가득하다. 석우 등은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들은 안전한 곳으로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과연 안전한 곳이란 있는 것일까, 지옥열차는 그렇게 달려간다.

좀비영화는 많은 걸 담아낸다. 많은 걸 상징한다. 메타포 투성이다. '부산행'이 여느 좀비영화와 다른 점은, 탁월한 점은, 한국을 열차 안에 담아냈다는 점이다. 그리고 시선이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이래 좀비영화들은 수없이 변주돼왔다. '부산행'은 한국에서 만든다는 것 외에 달라야 했다. 한국적인 것, 한국의 공포가 담겨야 했다. 연상호 감독은 빠른 고속열차를 택했다.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지만, 불법 데모와 소요가 일어나고 있어도 잘 대처하고 있으니, 안심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정부. 정부의 발표와 다르게 SNS로 좀비 영상이 무섭게 퍼진다. 그런 가운데 고속으로 달리고 있는 열차. 빠르게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담아낸다.

6.25 때부터 서울을 버리고 이미 떠난 정부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안심하라고 했던 한국. 그 뒤 고속열차처럼 빠르게 빠르게 달려가기만 했던 한국. 미처 열차에 타지 못한 사람들은 버리고 달려갔다. 목적지가 안전한지조차 모른 채. '부산행'은 그렇게 고속열차를 택하면서, 한국적인 좀비영화로 탄생했다.

나라가 버렸으니 각자 알아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 자기가 살아야 하는 사람들과 자기만 살아야 하는 사람들. 열차 안에서도 그렇게 사람들은 나뉜다.

'부산행'은 옳은 게 무엇인지를, 시선으로 그린다. 시선은 권력이다. 내려보는 시선, 올려보는 시선, 같이 바라보는 시선. '부산행'에서 사람들은 줄곧 내려본다. 카메라는 종종 아래에서 사람들을 올려본다. 이 시선은 어린아이의 것이다. 공유의 딸로 나오는 수안(김수안)의 것이다.

어린 소녀는 "이럴 때는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아빠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알아서 할거야. 우리만 이렇게 가면 돼"라는 아빠의 말을, 거부한다.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요"라고 한다. 당연하지만 옳지는 않은 일에, 그래도 옳은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를 내려다보는 시선은 어느새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는 것으로 점점 변해간다. 어른이 아이를 지킨다. 강한 사람은 약한 사람을 돕는다. 옳은 일이지만, 살기 위해선 안 해도 된다는 일을, 아이의 시선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부산행'이 지금 한국을 담아낸 방법이다.

'돼지의 왕' '사이비'에서 펄펄 끓는 날 선 시선을 보여왔던 연상호 감독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이런 '부산행'은 낯설 수 있다. 아마 연상호 감독이 아이 아빠가 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 '부산행'의 가족주의는 그렇게 탄생한 듯 하다. 작디 작은 아이의 손과, 아빠의 손이 맞잡는 모습이 계속 비추는 건, 그런 감독의 마음을 담은 듯 하다.

아빠 역할을 맡은 공유는, 아빠라면 십분 공감할 수 있다. 임산부 남편 역할을 한 마동석은, 그의 매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아내에겐 더없이 사랑스러우며 맨 손으로 좀비를 때려잡는 역할은 마동석 외에는 상상할 수 없다. 공유 딸 역할을 맡은 김수안은, '부산행'의 진정한 주인공이다.

음악은 날카롭게 심장을 두들긴다. 좁은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액션은 '설국열차'와 '올드보이' 장도리 활극을 연상시킨다. 연이은 객차로 연결되는 시퀀스들은 시간을 공간으로 담아낸 것 같다.

그동안 좀비영화들에서 느릿느릿 걸어대던 좀비들은 어느 순간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걷는 좀비들은 중산층을, 빨리 달리는 좀비들은 빈민계층을 뜻한다고 한다. 금융위기 속에서 탄생했던 '월드워Z' 속 좀비들은 무섭게 달렸다. '부산행' 좀비들도 달린다. 누군가 개, 돼지 같다고 한 대중은, 그렇게 분노하고 달린다. '부산행'의 좀비 액션은 매우 좋다. 단역 하나하나, 처절하게 분노하고 매달린다.

'부산행'은 한국형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 블록버스터다. 좀비 재난영화다. 수많은 메타포에, 지극히 한국적인 결말까지, 이 지옥열차가 어디까지 달릴지 궁금하다.

7월2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추신. 김의성이 맡은 아저씨는, 지금 대한민국 어떤 아저씨들의 표본 같다. 어른이 안 된 어른. 악은 언제나 끝까지 간다. 그리고 언제나 악에서 정의가 탄생한다. '부산행'의 결말은 그래서 의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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