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피넷 오늘의 유가 기준 경유 가격은 전국평균 1913원으로 휘발유 1892원을 뛰어넘었다. 지난 수십 년간 '서민 연료'로 불리며 휘발유보다 저렴한 가격을 유지해왔던 경유가 휘발유 가격을 넘어서는 이른바 '가격 역전 현상'이 고착화되면서 국내 에너지 시장과 물류 업계에 거대한 파장이 일고 있다.
통상적으로 국내 유류 가격은 휘발유에 더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과세 체계 덕분에 경유가 리터당 200원가량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국제적인 공급망 붕괴와 지정학적 위기가 겹치며 이 공식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이러한 기현상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 장기화에 따른 글로벌 에너지 수급 불균형이 꼽힌다. 유럽은 전통적으로 디젤 승용차와 산업용 장비 비중이 매우 높은 지역으로 경유 소비량이 압도적인데 그간 경유 수입의 상당 부분을 러시아에 의존해왔다. 그러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산 석유 제품에 대한 금수 조치가 시행되면서 유럽 내 경유 재고가 바닥을 드러냈고 이는 곧 전 세계적인 경유 현물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다. 국제 시장에서 경유 제품 가격이 휘발유 가격보다 높게 형성되자 이를 수입해 정제하거나 판매하는 국내 정유업계의 원가 부담이 즉각 반영된 결과다.
여기에 더해 겨울철 에너지 위기로 인한 대체 수요의 폭발도 역전 현상을 부채질했다.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자 유럽과 북미 지역에서는 가스를 대신해 발전기나 난방 시스템을 돌릴 연료로 경유를 선택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산업용과 난방용 수요가 겹치는 '더블 딥' 현상이 발생했다. 휘발유는 주로 승용차 운행에 한정되어 소비되는 반면 경유는 화물차, 건설기계, 선박, 농기계는 물론 발전 설비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경기 회복기와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수요 탄력성이 훨씬 낮아 가격 상승 압박을 더 강하게 받는다.
정부의 유류세 인하 정책 기조 또한 역설적으로 역전 폭을 키우는 변수로 작용했다. 정부가 고물가 대책의 일환으로 유류세 인하를 단행할 당시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았던 휘발유의 인하 폭을 더 크게 설정하면서 세금 차이로 유지되던 경유의 가격 우위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휘발유는 세금이 낮아지며 가격 하락 요인이 뚜렷했던 반면 국제 가격 자체가 폭등한 경유는 세금 인하 효과를 원가 상승분이 상쇄해버리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이러한 경유 가격의 고공행진은 국내 산업 전반에 심각한 비용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 특히 경유를 주 연료로 사용하는 화물 운송 업계와 건설 현장은 직격탄을 맞았으며 이는 곧 물류비 상승과 공사비 증액으로 이어져 소비자 물가 전체를 끌어올리는 악순환의 고리가 되고 있다. 과거 저렴한 유지비를 강점으로 내세워 폭발적으로 보급되었던 디젤 승용차 차주들 역시 경제적 메리트를 상실하며 중고차 시장에서 디젤차 기피 현상이 심화되는 등 자동차 산업의 생태계 변화까지 가속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제 에너지 시장의 구조적 결함이 해결되지 않는 한 이러한 역전 현상이 일시적인 해프닝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탄소중립 정책으로 인해 전 세계 정유사들이 신규 정제 설비 증설을 꺼리는 상황에서 경유의 타이트한 수급은 장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소비자들은 과거의 가격 구조에 머물기보다 고유가 시대에 대비한 에너지 소비 효율화와 친환경 모빌리티로의 전환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는 시점에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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