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늘구멍을 뚫기보다 힘들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두산 베어스의 내야진은 소문난 안정감을 자랑했다. 2000년대 이후 두산을 가을야구 단골 손님으로 만들어준 강력한 밑바탕이 내야진에 있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워낙 걸출했던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일까. 어느 순간 내야 세대교체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보일 정도였지만 이제야 그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다. 오명진(24)과 박준순(19), 이유찬(27), 임종성(20) 등이 동반 성장세를 보이며 새로운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심에 선봉에 서 있는 건 오명진이다. 오명진은 19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SSG 랜더스와 원정경기에 2번 타자 2루수로 선발 출전해 투런 홈런 포함 5타수 2안타 3타점 1득점으로 팀의 5-0 승리를 이끌었다.
팀이 2-0으로 앞서가던 5회초 상대 1선발 드류 앤더슨을 상대로 세 번째 타석에 나섰다. 앞서 연속 삼진으로 물러났던 오명진은 2사 1루 볼카운트 3-1에서 몸쪽 시속 152㎞ 패스트볼을 강하게 잡아당겨 우측 담장을 넘기는 투런포를 날렸다. 시즌 4번째 홈런.
올 시즌 최고 투수 중 하나로 활약 중인 앤더슨은 이날 5이닝 동안 80구를 던져 10탈삼진을 기록하며 위력투를 펼쳤는데 두산은 5안타 중 3개를 홈런으로 장식하는 파괴력을 뽐내며 앤더슨을 무너뜨렸다. 오명진은 7회에도 쐐기 적시타를 날리며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다.

2020 신인 드래프트 2차 6라운드 전체 59순위로 두산 유니폼을 입은 오명진은 1군에서 이렇다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두산이 연속해서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정도로 강력한 전력을 자랑할 때였고 내야엔 김재호, 오재원(이상 은퇴), 허경민(KT), 최주환(키움) 등 쟁쟁한 선배들이 버티고 있었다.
결국 2년 동안 단 7경기 출전에 그친 오명진은 국군체육부대(상무)에도 합류하지 못하고 현역병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해야 했다. 그리고 2024년 6월 전역 후에도 1군에선 단 2경기에서만 뛰었다.
올 시즌을 남다른 각오로 준비했다. 스프링캠프에 합류했고 김재호의 은퇴와 허경민의 이적 등으로 생긴 구멍은 오명진에게 더 없을 기회였다. 그리고는 시범경기에서 타율 0.407로 타격왕에 오르며 집중조명을 받았다. 당시 이승엽 감독도 연일 오명진을 칭찬하기 바빴다.
개막전부터 선발 기회를 잡았으나 3월 4경기에서 13타수 무안타에 그치며 1군 무대의 높은 벽을 체감했다. 이후에도 1할대 타율에서 허덕였고 결국 2군행 쓴맛을 본 게 오명진의 커리어를 완전히 바꿔놨다. 이후 상승 기류를 타며 완벽히 반등했다. 누구보다 꾸준히 기회를 얻었고 지난달 초 이승엽 감독이 자진사퇴했지만 이후 조성환 감독 대행 체제에서도 붙박이 주전으로 기용됐다. 감독 추천 선수로 생애 첫 올스타전까지 경험했다.
66경기에서 타율 0.293(222타수 65안타) 4홈런 35타점 27득점, 출루율 0.350, 장타율 0.423, OPS(출루율+장타율) 0.773으로 팀의 핵심 타자로 활약 중이다.
초반 부침을 겪어낸 게 지금의 오명진을 만들었다. 경기 후 만난 그는 "지금 생각하면 웃기다. 어차피 10개, 20개, 30개 이상을 칠 건데 왜 안타 하나 하나에 일희일비했나 모르겠다"면서도 "그 경험 때문에 지금까지 왔다"고 전했다.

두산 내야에서 강승호(559⅓이닝)으로 많은 이닝을 소화했고 2루수로는 독보적인 지분을 맡고 있다. 이젠 명실상부 두산의 붙박이 2루수라고 할 수 있다. 조성환 감독 대행도 이유찬과 오명진, 강승호 등 새로운 얼굴들의 활약을 반기며 당분간은 위치를 조정할 뜻이 없다는 뜻을 나타냈다.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묵묵히 믿어준 지도자들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았다. 오명진은 "초반에 많이 힘들었는데 기술적인 부분에서 딱히 바꾼 건 없고 멘탈적으로 많이 집중했다"며 "못 했을 때도 이승엽 (전) 감독님도 그렇고 조성환 감독님도 계속 믿어주셨다. 코칭 스태프가 저를 믿어주신다는 것 자체가 동기부여도 더 됐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부족함을 더 크게 느낀다. 시즌 전 구상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만족감을 나타내면서도 "아직 주전이라고 하기엔 힘들다. 올해 잘하고 내년, 내후년까지 3년은 잘하고 주전이라고 이야기하겠다"고 자세를 낮췄다.
고영민, 손시헌 등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두산의 탄탄한 내야진을 보고 자라왔고 김재호, 오재원, 허경민 등과는 함께 생활을 하기도 했다. 선배들이 쌓아온 탄탄한 내야진에 대한 이미지에 금이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갖고 있다. "아무래도 두산의 내야 자리는 정말 어느 팀보다 수준도 특히 높은 것 같다"며 "아직은 한참 못 미치지만 내년, 내후년도 있기 때문에 한 번 그에 걸맞은 선수가 되도록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박준순, 이유찬, 임종성 등 올 시즌 몰라보게 성장한 또래 선수들이 있어 더욱 힘을 내고 있다. "저도 어리고 (박)준순이, (이)유찬이 형도 나이가 많은 편이 아닌데 비슷한 또래끼리 으쌰으쌰하니까 더 동기부여도 생기고 의지가 되는 것 같다"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두산의 내야 세대교체는 몇 년 동안 크나 큰 과제 중 하나였다. 9위로 처져 있어 남은 시즌 커다란 희망을 찾긴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 내야 세대교체에 대한 자신감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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