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농구 역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가 세워졌다. 김정은(38·하나은행)이 누구도 밟지 못했던 601경기 출전 대기록을 썼다.
하나은행은 21일 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5~2026시즌 WKBL 정규리그에서 우리은행을 61-53으로 꺾었다.
이날 승리로 하나은행은 8승 3패를 기록하며 2위 그룹과의 격차를 두 경기로 벌렸다. 4연승 중이던 우리은행은 5승 6패로 주춤했다.
경기의 중심에는 김정은이 있었다. 김정은은 1쿼터 4분 12초를 남기고 코트에 들어서며 통산 601경기 출전을 기록했다. 임영희 우리은행 코치가 보유하고 있던 600경기를 넘어 여자농구 통산 최다 출전 단독 1위에 올랐다.
베테랑 김정은은 이날 18분 12초를 뛰며 8득점 3리바운드 2어시스트로 팀 승리에 힘을 보탰다. 특히 4쿼터 승부처에서는 돌파 후 득점을 직접 올려놓으며 하나은행 승리에 방점을 찍었다.
이상범 하나은행 감독은 김정은의 기록을 두고 "정말 대단하다"며 "여기저기 아픈 데도 많았을 텐데 지금도 코트에 들어가 자기 몫을 해낸다. 농구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 나이에도 자기 역할을 해내는 건 굉장한 업적"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에게도 이날은 쉽지 않은 하루였다. 그는 "기록이 있는 날마다 크게 졌던 기억이 많아서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며 "선수들도 부담을 느낀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선수 생활 중 숱한 고난을 이겨낸 결과다. 김정은은 무릎과 종아리, 발목 부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바 있다. 어려웠던 순간을 되돌아본 그는 "솔직히 여기까지 올 줄 몰랐다. 수술도 많이 했고 끝났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버텨온 나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이날 상대가 우리은행이었던 점도 김정은에게는 특별했다. 김정은은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우리은행에서 위성우 감독과 함께했다.
특히 종전 최다 출전에 빛난 임영희 코치와는 선수 시절 함께 뛰기도 했고, 임 코치는 이날 상대 벤치에서 우리은행을 지휘했다. 김정은은 "데뷔가 2005년 12월 21일인데 하필 그날, 우리은행 시절 함께 뛰었던 임영희 코치 앞에서 이 기록을 세웠다"며 "맞출 수 없는 타이밍인데 딱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김정은은 "임 코치가 '고생했다'고 한마디 했다. 그때 감정이 올라왔다"며 "우리은행 시절 부상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언니(임명희)에게 은퇴해야 할 것 같다고 고민도 털어놨는데, 날 잡아줬다. 내겐 정말 고마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은퇴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순간도 있었다. 김정은은 "발목이 심하게 돌아갔을 때 정말 그만하려 했다. 더는 못 보여주겠다는 자존심도 있었다"며 "그때 임 코치가 수술하고 은퇴하는 게 아쉽지 않겠냐고 말해줬다. 응원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기록을 세운 순간에도 김정은의 생각은 오직 승리였다. 1쿼터 중반 교체로 코트를 밟았던 그는 "박수받으며 들어간 게 신기록이라는 건 알았지만, 경기에 지장을 줄까 봐 별생각은 없었다. 꼭 이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정은은 "할 말이 있다"며 이상범 감독을 향해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승부처에서 감독님이 저를 찾는다는 걸 느낀다. 그 신뢰 덕분에 더 잘하려 한다"며 "나이 때문에 더 못 뛰는 것 같지만, 조금 더 뛰어도 된다. 믿어주셔서 감사하다고 꼭 전하고 싶다"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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