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까지 준 신해철, 독설 아닌 온전히 '음악'으로 기억될 시간

[길혜성의 뮤직 유니버스]⑧

길혜성 기자 / 입력 : 2014.10.28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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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신해철 / 사진공동취재단


국내외를 막론하도 아이러니한 상황은 항상 반복된다. 대중과 미디어는 보통 유명스타들의 생전에는 그들의 본업보다는 사적인 부분, 특히 부정적 측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단번에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서다. 기자 본인 역시 이 부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소중했던 스타의 진정한 가치를 대다수가 깨달을 때(아니, 이미 모두 알고 있었지만 쉽게 인정하지 않았을 뿐)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세상을 떠날 때가 많다.

가수 신해철이 27일 오후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으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을 마감했다. 향년 46세. 최근까지도 신곡을 발표하고 방송에 등장하는 등 왕성히 활동했던 그이기에 가요계와 팬들의 충격과 안타까움은 크다. 특히 청소년 시절, 그의 주옥같은 음악을 듣고 감성과 즐거움에 젖었던 30, 40대 팬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대중과 미디어는 신해철의 음악 보다는 그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다. 그가 실력과 인지도를 겸비한 천재형 가수임에도 인기는 아예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모습으로, 민감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방송과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일부에서는 언제부턴가 신해철에게 음악이 아닌 말을 원하는 게 되는 경우도 잦아졌다.

신해철의 말에 한편에서는 열광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독설일 뿐이라고 깎아 내렸다. 신해철은 한 동안 음악이 아닌 말로써 적지 않은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고, 특히 그가 걸어온 음악 인생을 잘 모르는 사람들로부터는 무차별 공격까지 받았다.

사망하기 석 달 전에는 7년 만의 새 솔로 앨범을, 한 달 전에는 넥스트의 신곡을 내는 등 언제나 활발히 음악 활동을 한 뮤지션이 바로 신해철인데도 말이다.


신해철이 갑작스럽게 사망한 지금에서야 대중과 미디어의 그의 말이 아닌 음악에 다시 집중하는 모습이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서라도 제대로 신해철에게 접근하는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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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신해철 / 스타뉴스


신해철은 한마디로 천재형 뮤지션이다. 서강대 철학과 재학 시절, 만 스무 살 미소년의 모습으로 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 무한궤도 리드보컬로 등장해 직접 작사 작곡한 '그대에게'로 대상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사운드와 곡 전개를 취했던 경쾌한 비트의 '그대에게'는 지금까지도 한국의 대표 응원가로 쓰이고 있다.

신해철은 1989년에는 무한궤도 1집을 발표한다. 이 앨범에서는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와 유쾌한 곡 '여름 이야기'가 동시 히트했다. 특히 신해철은 자신이 작사 작곡한 '우리 앞의 생의 끝나 갈 때'의 노랫말을 통해 과연 스무 살 초반의 청년이 썼을까 싶을 정도의 성숙함을 보여줬다.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그대여."

'우리 앞의 생의 끝나갈 때' 가사 일부다.

1990년 만 22세가 된 신해철은 처음으로 솔로 앨범을 내놓았고, 역시 자신이 만든 발라드 명곡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와 댄스곡 '안녕'을 동반 유행시켰다.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는 고급스럽게 팬들의 감성을 건드렸고, '안녕'에서는 랩에 도전했다.

1991년에는 솔로 2집을 발표, 독특함이 돋보였던 타이틀곡 '재즈카페'의 대성공으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고, 감성 곡이가 철학적 가사가 돋보였던 '나에게 쓰는 편지'로 천재성까지 다시 한 번 인정받았다.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 이상 우리가 사랑했던 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 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 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 때로는 내 마음을 남에겐 감춰왔지. 난 슬플 땐 그냥 맘껏 소리 내 울고 싶어 나는 조금도 강하지 않아."

'나에게 쓰는 편지' 노랫말로, 스물 셋 청년 신해철의 번민과 인생관을 알게 하고 있다.

솔로 가수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신해철은 1992년에는 돌연 록밴드 넥스트를 전격 결성, 새 앨범을 선보인다. 인기에 안주하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음악에 목말라 했던 그의 성향을 다시 한 번 알게 하는 순간이었다.

신해철은 넥스트 1집에서도 직접 작사 작곡한 일렉트로닉 록 사운드 곡 '도시인'과 록 발라드 '인형의 기사 파트2'를 동시 히트시키는 등 여전한 저력을 선보였다.

신해철은 이후에도 솔로와 넥스트 활동을 넘나들며 사망 전까지 '날아라 병아리' '히어 아이 스탠드 포 유' '일상으로의 초대'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그로잉 업' 등의 히트곡을 탄생시켰다.

1990년 대 중반 이후의 신해철은 대중성 보다는 자신이 그 때 그 때 하고 싶었던 하드록, 록, 일렉트로닉, 발라드, 팝 등 다양한 장르를 다뤘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멜로디감이 있다는 평가의 신해철이기에 파격 실험의 음악들도 대중들에 그리 이질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신해철은 올 6월에는 7년 만에 솔로 정규 6집 '리부트 마이셀프 파트1' 발표했고, 지난 9월엔 재결성된 넥스트의 이름으로 신곡 '아이 원트 잇 올' 데모 버전을 공개하는 등 최근까지도 활발히 음악 활동을 했다.

신해철은 팬들이 정한 솔로 정규 6집 타이틀곡이자 록 발라드 스타일의 '단 하나의 약속'과 원 맨 아카펠라 수록곡인 'A.D.D.A'를 통해 여전한 음악적 저력을 보여줬다.

지난 26년 간 솔로와 넥스트로 정규 앨범 각각 6장, 무한궤도로 1장의 정규 앨범을 내고 이외에도 여러 스페셜 음반을 선보인 신해철은 국민들에 유쾌한 또 하나의 선물도 줬다.

국민 응원 구호로 쓰이고 있는 '대~한민국 짝짝짝짝짝'의 음원 소유권자가 바로 신해철이다.

신해철은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붉은악마의 요청으로 응원가 '인 투 디 아레나'를 작곡했는데, 바로 이 노래의 초반부에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대~한민국 짝짝짝짝짝'의 음원이 나온다. 여러 곳에서 저작권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응원구호를 음원 형태로 처음 제작한 뮤지션은 바로 신해철이며 실제 저작권도 그에게 있다. 하지만 신해철은 비영리 목적으로 사용하는 데 대해선 해당 부분에 대한 저작권을 오픈하고 있다.

천재뮤지션 신해철, 그가 있어 행복했고 앞으로도 그의 음악 덕에 행복할 것이다.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언제나 음악 및 응원 구호와 함께 팬들과 함께 할 것이다.

한편 신해철 소속사에 따르면 고인은 이달 17일 서울 송파구 S병원에서 장 협착증 수술을 받은 후 18일 퇴원과 통증 호소로 인한 입원을 반복하다 22일 낮 12시께 병실에 쓰러져 있는 것이 발견됐다. 이후 오후 1시께 심정지가 왔고, 심폐소생술 등을 받은 뒤 혼수상태에서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후송됐다.

신해철은 서울아산병원에서 22일 오후 3시간여 걸쳐 장 내에 발생한 염증 등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으나, 27일 오후 8시19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으로 끝내 생을 마감했다.

고 신해철의 빈소는 28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마련됐으면 발인은 31일 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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