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 "'스톱'은 작가로서의 발언..안전해야 영화도 할 수 있다"(인터뷰①)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6.12.3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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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톱'의 김기덕 감독 / 사진제공=김기덕필름


김기덕 감독의 '스톱'(STOP)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쓰나미로 벌어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소재로 삼았다. 주인공은 원전 인근에 살던 젊은 부부다. 사고가 벌어진 뒤 허겁지겁 거처를 옮긴 그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정부 관계자의 연락을 받는다. 부부의 임신을 알고 있다는 검은 옷의 남자는 기형아 출산 가능성이 높다며 낙태를 종용한다. 두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과연 그들의 아이는 괜찮을까.

게릴라 같은 제작 방식, 거친 묘사와 정제되지 않은 느낌은 여전히 김기덕의 것이 분명하지만, '스톱'이란 제목 아래 일본을 무대로 일본 배우들을 써서 원전반대를 외치는 이 영화는 이전 감독의 작품들과는 완전히 다른 주제를 품고 있다. 거칠 것 없는 금기의 파괴자이기도 한 김기덕 감독의 공포와 적개심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한다. 김기덕 감독은 "내가 가장 두려움을 느끼는 것 첫째가 원전"이라며 "영화 20편 만드는데 한 편 정도는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을 담아야겠다고 생각을 했다"고 강조했다.


'스톱'은 원전사고 피해를 다룬다. 공교롭게 비슷한 사건, 주제를 다루는 '판도라'와 같은 시기 개봉했다. '판도라'도 혹시 보셨나.

▶'판도라'를 봤다. 제작자기도 하니까 주요 영화들은 다 본다. '판도라'는 제작비가 100억대고, 우리 영화는 그보다 훨씬 작은 영화니까. 워낙 소박해 비교할 순 없지만 원전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스톱'의 경우 올해가 아니면 기회가 없어 올해 개봉하려 했다. 경주 지진이 벌어져 더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다. 마침 개봉일을 잡지 못하고 있던 '판도라'도 이 시기 개봉했다. 이걸 하나님이 도와줬다고 해야 할지 아이러니하다. 촛불시위가 일어나는 것도 어쩌면 이 영화를 긍정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드는 거니까.

'판도라'가 엄청난 재앙이 벌어지는 상황을 가정한 극복에 대한 이야기이고 공포와 경고를 담았다면, '스톱'은 이미 벌어진 일을 다루면서 보이지 않는 것과의 싸움을 그린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잡으면 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들이마시고 균형이 깨졌을 때 생기는 결과는 인류의 또 다른 역사가 된다. 어쩔 수 없다.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를 그리고 싶었다. 드라마적으로는 남편과 아내의 갈등을 보여주면서 결국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든다. 그런 것들을 담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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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톱'의 김기덕 감독 / 사진제공=김기덕필름


-원자력에 대한 공포심, 원전반대에 대한 메시지가 분명하게 읽힌다.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는 데 두려운 게 분명히 있다. 저는 첫번째가 원자력인 것 같다. 원자력발전소와 핵무기. 그로 인한 방사능. 땅 속에 있는 우라늄이 무슨 문제가 되겠나. 인간이 만든 시스템이 문제다. 대량 에너지를 만들겠다는 것, 대량 살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두렵다. 다른 문제들은 일시적이고 피해 범위가 부분적이라면 이는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수습이 불가능하다. 범위가 엄청나고 누구도 피할 수 없을 것 같고, 그것 때문에 영화도 못 만들게 될 것 같고. 무서운 건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보여야 때려잡든 말든 하지 않겠나. 영화 20편 만드는데 한 편 정도는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을 담아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김기덕은 금기와 터부마저 두려워하지 않는 감독 아닌가. 원전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체르노빌 사건 이후 장애와 기형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의 사진을 본 적 있다. 원전사고 후 당장 일어난 게 아니라 방사능 오염지역이 바람을 타고 이동하며 인근 지역에서 벌어진 것이다. 정말 바로 볼 수가 없더라. 후쿠시마에서 원전사고가 터졌을 때 강하게 연상이 됐다.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그 문제가 외형적 기형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내면의 시스템, 몸 기능의 문제로도 발생하지 않겠나. 내가 생각할 때 이런 식의 사고는 인간의 성질 자체, 균형을 바꿔버릴텐데 소름이 끼쳤다. 당장 후쿠시마에서 한반도 쪽으로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다 해도 현재 중국 동해안에 엄청난 원자력 발전소들이 지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핵발전소 비중이 높다. 아시아 전체가 핵발전소 덩어리다. 그런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끔찍하다. 그 모두가 종합된 것 같다. 제가 '스톱' 이전에 어떤 영화를 만들었느냐 하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안전해야 영화를 하든 예술을 하든 하지 않겠나. 영화 작가로서 발언을 하자고 생각했다.

-주제와 문제의식 때문에 일본 로케이션 촬영은 당연한 결정이었겠다.

▶그 쪽의 이야기고 현실적으로도 공감할 부분이 강하니 당연히 그래야한다고 생각했다. 일본 촬영이 힘들어 한국 쪽으로 옮길까 했다. 벌어지지 않았지만 벌어질 수 있는 문제라고 보는 거다. '판도라'도 이를 가정한 것이고. 당시엔 지나친 확대해석일 것 같았고, 최선을 다하는 관련 종사자들을 너무 미리 재단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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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스톱' 스틸컷


-마지막까지 저 부부가 아이를 과연 낳을까. 만약 낳는다면 어떤 아이가 태어날까 조바심을 내게 한다.

▶멀쩡하게 태어난다. 장애가 아니라 초능력을 갖고 태어난 셈이다. 이미 오염지역 안에서 기형아를 낳는 걸 보여줬고, 엔딩에서 이를 반복할 필요는 없었다. 하려 했던 메시지도 그게 아니었다. 우리들의 두려움과 공포심, 의심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태어난 아니는 청각이 1000배 뛰어나다. 물론 고통이기는 하다. 세계엔 이미 수많은 원전반대 단체가 있다. 끊임없이 원전 폐기를 요구하고 외치지만 대부분 귀를 막고 이를 듣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장애가 아니겠는가. 경고와 요구를 무시하는 상황 자체가 장애임을 은유하고 싶었다.

-엔딩에 나오는 소리가 특이하다.

▶띠링띠링 하는 소리는 일본의 지진 경보다. 지진이 온다는 소리다. 그 예언대로 2011년으로부터 7년 뒤, 2018년 큰 지진이 난다면 영화가 현실이 된다. 그런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경보 소리는 일본에서 영화를 찍으며 처음 알았다. 공포와 경각심을 주지 않는 소리다. 저희 같으면 오란하게 사이렌을 울릴 것 같은데, 우왕좌왕 하지 말고 침착하게 대응하라는 느낌이 강한 소리다.

<인터뷰②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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