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풍과 장형진 고문(이하 영풍 측)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한국기업투자홀딩스, 이하 MBK)와 손잡고 고려아연 이사회 장악을 위해 체결한 경영협력계약의 구체적인 조건이 공식 문서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됐다. 그동안 자본시장에서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고려아연 주식 헐값 넘기기' 의혹이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되면서, 영풍 이사진을 향한 배임 혐의 논란과 함께 자본시장 전체에 파장이 일고 있다.
■ 베일 벗은 콜옵션 가액… 주당 '70만 원+연 5% 이자'
법조계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영풍은 지난 2024년 9월 13일 MBK 측과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경영협력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에는 영풍이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고려아연 주식 257만 91주를 MBK 측이 주당 '70만 원+연 5% 가산이자'에 매수할 수 있는 강력한 '콜옵션(주식매수청구권)' 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밝혀졌다.
해당 콜옵션의 권리 행사 기준일은 공시 문건상 '공개매수 완료일로부터 2년이 지난 날' 또는 '영풍·MBK가 추천한 이사가 고려아연 이사회의 과반 이상을 차지한 날(본건 경영권 확보일)' 중 먼저 도래하는 날로 명시되어 있다. 영풍과 MBK 측이 초기 계획했던 고려아연 이사회 과반 장악 등 경영권 확보에 난항을 겪게 되면서, 시장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공개매수 완료일로부터 2년이 되는 시점인 10월 17일(옵션 기준일)에 모아졌다.
■ 칼자루 쥔 MBK vs 해명 나선 영풍… 진실 공방
논란이 확산되자 MBK 측은 지난 19일 보도참고자료를 배포하고 "해당 콜옵션은 아직 행사되지 않았으며, 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 투자금을 회수하기 전에는 이를 행사할 수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히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영풍 측이 제출한 공시 문건의 세부 내용이 구체적으로 알려지면서 MBK의 해명은 무색해진 모양새다. 문건에 기재된 조건에 따르면, MBK가 보유한 콜옵션은 행사 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콜옵션 행사기한)에 일시 또는 수 회에 걸쳐 영풍을 상대로 옵션 대상 주식의 전부나 일부를 신규 주주 또는 지정된 제3의 매수인에게 넘기도록 요구할 수 있다.
즉, 추가적인 별도 계약이 없는 한 MBK는 3개월이라는 기한 내에 언제든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시점을 선택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절대적 칼자루'를 쥔 셈이다. 이 같은 명확한 조항이 있음에도 시장 설명 과정에서 축소되거나 누락되었다는 의구심이 커지는 대목이다.
■ '최대 수천억 원' 손실 우려
시장에서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영풍의 재무적 손실 규모다. 최근 3개월간 고려아연의 주가는 최저 83만 6,000원에서 최고 143만 원까지 치솟으며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이를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더라도 MBK가 주당 70만 원대에 콜옵션을 행사할 경우, 영풍은 주식을 시장에 그대로 팔았을 때와 비교해 주당 수십만 원, 총액 기준으로는 최대 수천억 원에 달하는 손해를 보며 주식을 넘겨야 한다. 결과적으로 MBK는 가산이자를 제외하고도 앉은자리에서 막대한 시세 차익을 거두는 반면, 영풍 법인과 소액주주들은 그만큼의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불평등한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문건 내 괄호 조항인 "당사자들이 별도로 합의하는 경우에는 당사자들이 합의하여 정한 날"이라는 예외 장치를 두고 최근 새로운 합의가 이뤄졌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하지만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이 조항을 발동해 조건을 변경했다면 즉각적인 정정 공시 사안"이라며 "관련 공시가 없었다는 점에서 계약 조건이 유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입을 모았다.
■ 법조계 "실제 행사 전이라도 배임죄 성립 가능성 높아"
이번 콜옵션 가액의 확정은 영풍 이사진의 '배임죄' 성립 여부를 가릴 결정적 스모킹 건이 될 전망이다. 법조계에서는 MBK가 실제로 콜옵션을 행사해 영풍에 최종적인 손해가 발생하기 전이라도 이미 사법적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형사법 전문 변호사는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회사에 현실적인 재산상 손해가 확정되지 않았더라도, 일방적으로 불리한 법적 의무를 지우거나 대안 없이 위험을 초래한 계약을 체결한 시점에 이미 배임죄는 법적으로 완성된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풍 이사회가 회사에 수천억 원대 손실 위험을 안길 수 있는 독소조항을 알고도 승인했다면, 이는 주주에 대한 신의칙을 저버린 임무 위반 행위이자 배임죄의 핵심 요건을 충족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분석했다.
결국 경영권 탈환이라는 집단적 목적을 위해 회사 법인의 이익을 희생시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진 만큼, 향후 소액주주들의 집단 소송과 고려아연 측의 추가적인 법적 공세가 이어지며 영풍과 MBK 간의 동맹 관계도 새로운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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