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톰 크루즈+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신박한 콜라보 지나친 메시지와 몰입을 힘들게 하는 극중극 형식으로 흥행참패

'꺼진 불도 다시 보자!’
‘디거’의 흥행 참패를 바라보는 시선은 대체로 다소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의 복잡한 전개 과정과 지나치게 도드라지는 메시지의 과잉 등에서 요인을 찾는다.

영화는 3대째 석유기업을 운영하는 재벌 디거 록웰(톰 크루즈)의 이야기를 그렸다. 그의 그린란드 빙하 시추 시설에서 메탄이 폭발하고 이 때문에 발생한 균열로 인해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떨어져 나가 유럽 대륙을 집어삼킨다.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빼앗긴 뒤 또 다른 얼음덩어리가 이제 아메리카 대륙을 향한다. 인류가 맞닥뜨린 최악의 재앙이 다가온다.
디거 록웰은 이 같은 재앙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세계가 자신이 운영하는 석유기업에 의존해 살아왔다는 사실도 잊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이야말로 전 세계를 구할 수 있다는 오만함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무능하면서도 되레 완강한 권력 의지를 휘두르는 미국 대통령(누가 봐도 도널드 트럼프를 떠올리게 한다) 등 행정부와 유착(심지어 이들을 조종하려 하기까지 한다)해왔다.
영화는 이 같은 이야기를 통해 기후 위기와 환경 재앙 그리고 이에 대처하는 무지하면서도 오만한 세상을 조롱하고 풍자한다.
어떤 이는 말한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연출한 바, 극 중 디거 록웰을 통해 발산하는 기후 위기와 환경 재앙에 관한 메시지는 말 그대로 직격이라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만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강조한 메시지의 과잉이라고. 흥행 참패의 원인도 바로 거기에 있다고.

또 다른 이는 말한다. 극중극 형식으로 짜놓은 이야기가 지닌 복잡하고 다소 난해한 서사의 과정을 따라가기 쉽지 않다고. 현실과 무대, 카메라 앞과 밖의 공간과 시간을 넘나들며 풀어내는 이야기의 흐름을 제대로 포착하려면 관객이 그만큼 정신적 노동을 감수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 같은 형식과 서사의 전개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역작으로 꼽히는 ‘버드맨’(감독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상 3관왕을 차지했다)을 본 이들이라면 그리 낯설지 않을 터이다. 이제는 빛바랜 스타가 연극무대에 도전하면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는 깊은 시선의 카메라 워킹을 통해 시공간을 넘나들며 이야기의 진정성을 인정받았다.
물론 ‘버드맨’으로 얻은 감독의 성취가 곧장 ‘디거’로 이어질 수는 없는 법. 하지만 감독이 ‘디거’를 통해 새롭게 끌어들인 형식은 과장된 재앙이라는 위기가 결코 상상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에서 기어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메시지의 과잉이라는 비판적 시선 역시 톰 크루즈가 약 10여분에 걸쳐 펼쳐내는 역동적 연기 앞에서 무색해지지 않을까. 위기와 재앙의 책임을 자신에게만 지우려 하는 인간들 앞에서 디거 록웰은 그 위기와 재앙을 몰고 온 석유와 이를 제공한 자신 덕분에 인류가 일상을 유지하고 번영해온 것 아니냐며 통렬히 현실을 드러낸다. 자신에게 책임을 묻고 공격해오는 유럽의 정치인들 앞에서 10여분에 걸쳐 연설하는 디거 록웰, 아니 톰 크루즈의 연기는 말 그대로 압도적이다. 롱 테이크로 촬영했다는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디거’의 또 하나 성취를 가늠할 만하다.

그렇게 톰 크루즈는 어쩌면 배우 인생 최고의 역작을 완성한 게 아닐까. 오로지 ‘미션 임파서블’이나 ‘탑건’ 시리즈 등 주로 액션에 기댄 작품으로만 그를 떠올리는 관객이라면 그가 펼쳐낸 이 10여분의 롱 테이크 장면이 안겨주는 쾌감과 소름 돋는 연기력에 기립박수를 보내게 될 터이다.
‘흥행 참패=망작’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디거’는 말 그대로 현실을 깊게 파고 드는(dig) 감독과 배우의 끈질긴 협업 하나만으로 증명해냈다. 그리고 ‘디거’는 또 한 편의 빛나는 작품으로 남을 것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부디, 더 늦기 전에 몇 개 남지 않은 상영관을 찾아 ‘디거’를 감상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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