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토록 LG 트윈스를 사랑한 외국인이 또 있었을까. 2년 전 한국을 떠날 당시 펑펑 울며 팬들에게 이별을 고했던 케이시 켈리(37)는 여전히 LG와 옛 동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보낸 문자메시지 한 통은 최근 스스로를 몰아붙이던 '또 다른 복덩이 외인' 오스틴 딘(33)에게 꼭 필요한 위로가 됐다.
LG는 25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KBO 리그 정규시즌 홈 경기에서 NC 다이노스에 연장 10회 접전 끝에 5-4로 역전승했다. 이로써 2연승을 이어간 3위 LG는 62승 1무 50패로 같은 날 패배한 1위 KT 위즈(64승 3무 42패)와 승차를 5경기로 좁혔다.
승리의 중심에는 오스틴이 있었다. 오스틴은 LG가 0-2로 뒤진 8회말 1사 1, 3루에서 손주환의 슬라이더를 받아쳐 좌측 담장을 넘겼다. 단숨에 3-2로 경기를 뒤집는 역전 스리런이자 시즌 33호 홈런이었다. 수비에서도 몸을 아끼지 않았다. 오스틴은 9회초 1사 만루에서 서호철의 2루 땅볼 때 1루에서 다리를 크게 벌려 구본혁의 송구를 잡아내며 병살을 완성했다.
경기는 다시 요동쳤다. LG가 동점을 허용한 데 이어 연장 10회초 한 점을 더 내주면서 3-4로 패배 위기에 몰렸다. 오스틴이 다시 나섰다. 10회말 선두타자로 등장한 그는 중앙 담장 상단을 때리는 대형 3루타를 터트렸다. 이후 두 차례 고의4구로 만루가 만들어졌고 홍창기가 끝내기 안타를 치면서 LG가 경기를 뒤집었다.
오스틴 개인에게도 역사적인 하루였다. 그는 이날 2루타와 단타, 홈런에 이어 마지막 3루타까지 추가하며 KBO 역대 33번째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다. 개인 첫 기록이자 LG에서는 1994년 서용빈, 2008년 안치용, 2013년 이병규에 이은 역대 4번째였다. LG 외국인 선수로는 최초였다.



그 집중력의 이유를 묻는 과정에서 뜻밖의 이름이 나왔다. 켈리였다. 2019년부터 2024년까지 6시즌 동안 LG에서 활약한 켈리는 KBO 통산 163경기 73승 46패 평균자책점 3.25를 기록했다. 2023년에는 LG의 29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에도 힘을 보탰다.
실력만으로 사랑받은 선수는 아니었다. 뛰어난 워크에식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새 외국인 선수들의 적응을 도왔고 한국 선수들에게도 먼저 다가가는 선수였다. 오스틴 역시 LG에 처음 왔을 때 켈리의 도움을 받았다.
팀을 떠난 뒤에도 인연은 끝나지 않았다. 매년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 가족들과 찾아와 LG 동료들을 만났고, 미국에서도 여전히 LG 소식을 챙기고 있었다.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오스틴은 "최근 조금 답답했다. 나 자신에게 너무 많은 압박을 주고 있다고 느꼈다. 내가 해야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걸 하려고 했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그런 상황에서 이날 경기 전 켈리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오스틴은 "켈리가 '너는 누구보다 압박감이 큰 상황을 잘 이겨내는 선수다. 그런 상황에 있는 것을 오히려 기쁘게 받아들여'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한 번에 하나씩만 해라.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야구를 즐겨'라는 이야기도 해줬다"며 "오늘은 그 조언을 정말 받아들이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오스틴에게는 단순한 야구 조언 이상의 의미였다. 그는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서 내 친구 중 한 명을 통해 '괜찮을 거야'라는 말을 내게 전해주신 것 같았다. 이렇게 어려운 순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켈리에게 받은 도움은 오스틴에게 또 다른 생각으로 이어졌다. 언젠가는 자신도 LG의 어린 선수들에게 그런 선배가 되고 싶었다.
오스틴은 꾸준한 활약의 비결을 묻자 "모든 사람에게 약점은 있다. 나는 내 약점을 최대한 잘 숨기려고 노력할 뿐"이라며 "나 역시 중요한 순간에 많이 실패했다. 하지만 야구에서 실패를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그런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 경험을 이제 후배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오스틴은 "어린 선수들에게 좋은 리더가 되고 싶다. 언젠가 내가 여기에서 뛰는 시간이 끝나면 젊은 선수들이 내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 그때 젊은 선수들이 좋은 역할을 해줄 거라 믿고 있고, 그들의 성장도 도와주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LG의 미래에 대한 기대까지 숨기지 않았다. 오스틴은 "LG 팬들은 기대해도 된다. 우리 팀에는 정말 유망한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LG의 미래도 밝다고 생각한다"고 활짝 웃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켈리로 돌아갔다. 이날 자신에게 먼저 연락해 힘을 줬던 켈리처럼 언젠가 오스틴도 떠난 뒤 LG 후배들을 도와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오스틴은 "당연하다. LG 트윈스라는 팀에서 최대한 오랫동안 은퇴할 때까지 뛰는 게 나의 가장 큰 목표이자 목적"이라며 "나는 야구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은퇴하고 나서도 어떻게서든 LG 트윈스라는 팀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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