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O 리그를 대표하는 '1999년생 동갑내기 절친' 두산 베어스 곽빈(27)과 키움 히어로즈 안우진(27)이 사상 첫 정규시즌 선발 맞대결에서 펼친 '동반 160km 광속구쇼'는 그 자체로 한국 야구의 역사였다. 하지만 경기 후 마주한 승자 곽빈의 시선은 자신의 신기록이나 승패가 아닌, 같은 길을 걸어온 오랜 친구를 향한 진심 어린 존경으로 향해 있었다.
29일 잠실야구장에서 펼쳐진 키움과의 맞대결에서 곽빈은 1회초부터 전광판을 뜨겁게 달궜다. 키움 히우라를 상대로 볼카운트 1볼-2스트라이크에서 던진 4구째 직구가 무려 시속 160.3km를 찍었다. 지난 23일 잠실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기록한 종전 자신의 최고 구속(시속 159.1km)을 불과 6일 만에 갈아치운 커리어 최고 구속 신기록이었다.
이에 맞선 안우진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수술 후 복귀 시즌임에도 특유의 파괴력을 앞세워 최고 시속 160km(직구 평균 156km)의 묵직한 돌직구로 응수했다. 양 팀 선발투수가 한 경기에서 모두 시속 160km를 돌파하는 KBO 역사상 전례 없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실속을 챙긴 쪽은 곽빈이었다. 곽빈은 96구를 던지며 6이닝 5피안타 3볼넷 8탈삼진 2실점으로 퀄리티스타트(QS)를 달성하며 시즌 11승째를 챙겼다. 반면 안우진은 5이닝 7피안타(1피홈런) 3볼넷 5탈삼진 5실점으로 패전의 멍에를 썼다. 경기를 앞두고 설종진(53) 키움 감독이 안우진에 대해 100구도 넘길 수도 있다고 밝혔지만, 일찍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하지만 경기 후 더그아웃에서 만난 곽빈에게서 자만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구속 160km 돌파 기념구를 따로 챙겼느냐는 질문에 곽빈은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이에 "그 정도는 그냥 넘어간다. 투수라면 꿈의 구속이지만, 1회에 그렇게 던지고 나니 오히려 밸런스가 좀 무너졌다. 그런 기록에 신경 쓰기보다는 무너진 내 밸런스를 빨리 찾는 게 우선이었다. 아무래도 힘을 쓰는 타이밍과 메커니즘이 순간적으로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2018년 신인 드래프트 1차 지명 동기이자 최고 파이어볼러로 꼽히는 안우진과의 첫 선발 맞대결에 대해서는 솔직한 부담감을 털어놨다. 관련 질문에 곽빈은 "의식이 안 된다는 건 거짓말이다. 워낙 서로 비교가 많이 되는 친구라 의식이 많이 됐다"며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서 밸런스가 흔들렸던 것 같다. 솔직히 맞대결은 다시 안 했으면 좋겠다. 서로를 위해서도 그게 낫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농담 뒤에는 깊은 동료애가 묻어났다. 마운드 위에서 안우진을 지켜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는 물음에 곽빈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살짝 뭉클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안)우진이도 그동안 부상으로 힘든 시간이 있었고, 나 역시 수술과 긴 재활로 고생했던 시기가 있었다. 서로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같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뜻깊고, 뭉클했다"고 감격했다.
이날 잠실에는 LA 다저스, 뉴욕 양키스, 캔자스시티 로열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등 메이저리그 5개 구단 스카우트들이 현장에서 두 파이어볼러의 공을 면밀히 관찰했다. 취재진이 '메이저리그에서 맞붙는 시나리오가 있지 않느냐'고 하자 곽빈은 "맞대결을 또 할 것이라면, 차라리 거기(MLB)에서 하는 게 훨씬 낫다"고 한 뒤 "웃으며 "국내에서는 이제 그만하고 싶다(웃음). 우진이도 올해는 복귀 과정이라 조심스럽겠지만, 내년 성적을 보면 다들 깜짝 놀랄 것이다. 꽤 오랜 기간 쉬고 돌아와 이 정도로 던지는 것 자체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곽빈은 이번 시즌 자신의 압도적인 페이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안우진이 한 수 위'라며 "제가 겸손 떠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당장의 모습만 보고 이야기하지만, 우진이가 2022시즌에 세운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다. 2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190이닝 넘게 던지며 KBO 역대급 기록을 세웠다. 최근 류현진 선배님 말고 그런 투수는 없었다. 앞으로도 내가 평균자책점 1점대를 찍지 않는 이상 우진이와는 비빌 수 없다"는 극찬을 남겼다.
곽빈은 승리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낮추며 친구의 부활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마운드 위에서는 가장 뜨거운 라이벌이자, 마운드 밖에서는 누구보다 든든한 동반자인 두 '괴물 파이어볼러'의 질주는 이제 잠실을 넘어 더 넓은 무대인 메이저리그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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